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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페티 | 돌아갈 수 없는 세계COLLABORATION/WRITING 2018. 12. 28. 11:37
*독백 多
*주로 다자이시점입니다.
……어두운 방 …… …어두운 실내
…………어두운 시야 …어두운……
……… 끝없는 어둠
'허억, ... ...'
얼마만의 꿈인지. 오랜만에 인사차 나온 꿈치곤 사납기가 그지없군. 방금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한 정신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리에 앉는 느낌이 평소와 달랐지만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런 거라 생각하곤 빨리 잠에 깨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보다 제 기숙사가 원래 이리도 어두웠었나. 더군나 이 꺼림칙한 느낌은 또 뭔지. 한참동안이나 방을 들여다보곤 그 원인을 알아냈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답답해 숨 하나 쉬기 힘들고 너무나 무거운 공기에 압사해 버릴 것만 같은 장소,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제 집무실이였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마피아로 활동할 때의 집무실이다.
이곳에 멀쩡히 누워 잠든 걸로 보아서는 잡혀온 건 아닌데.
그럼 왜 여기에.. .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있던 때에 어느새 제 몸은 거울 앞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움직였던가.
그래도 이왕 온 거 상태나 확인할 겸 시선을 옮기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덥수룩한 머리와 눈에 감긴 새하얀 붕대, 칠흑 같은 검은색 코트와 정장. 이런 걸 갈아입힐 때동안 깨지 않았던 건가? 더 놀라운 것은 한층 어려보이는 미모였다.
제 얼굴에는 진작 사라지고 없었던 애교 살이 드러난 소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꿈인가. 직감적으로 이것밖에 생각할 수 없다. 꿈이 아니라면 이 상황은 설명이 불가했다. 그렇다면 이게 말로만 듣던 자각몽이라는 건가. 어찌됐던 빨리 깨길 바랄 뿐. 꿈에서까지 과거로 방치해둔 곳의 기억을 되짚어보고싶진 않았다. 억지로라도 꿈에서 깨볼까 생각했던 그때,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꿈이라면 조금은 즐겨도 되지 않을까.]
이 상황에 즐길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할 법했지만 제 몸의 상처와 집무실의 상황을 보았을 때는 영락없이 미믹과의 항쟁이 일어나기 전이였다.
즉, 오다사쿠가 살아있을 적이다. 꿈이 여도 친우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자신에게는 엄청난 의미였다. 달갑지 않은 얼굴을 보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사실은 달콤한 유혹과도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움직임이였다. 애초에 꿈을 자주 꾸는 편도 아니고 가끔가다 꾸어도 자각몽은 아니었다. 끄응, 이걸 어떻게 한담.
자기최면이라도 걸어야하나.
* * *
손을 움직인다. 움직인다. .. ..쯧.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데 이러다간 잠에서 깨어나는 게 더 빠를 것 같군. 제 몸은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책상에 앉아 천장과 눈씨름이나 벌이고 있었다.
슬슬 지겨워져 마음속이나마 미간을 꾹꾹 누르며 포기하려는 때에 제 몸이 기우뚱하며 뒤로 넘어졌다. 아파라.
'..어라. '
성공..인가. 원래라면 뒤로 짚고 있어야하는 팔이 생각대로 미간으로 옮겨가 뒤로 발라당 넘어진 우스운 꼴이 되었다. 아까는 그리 성질을 부려도 절대 안 될 것처럼 굴더니. 마음을 언제나 편하게 먹어야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다는 건가. 닫힌 입 사이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꾹 눌러 담으며 넘어진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다듬고 서둘러 집무실을 벗어났다.
자, 이제 오다사쿠는 어디 있을까. 건물 하층 부근쯤에 있을 텐데.
답지 않게 빠른 걸음으로 사방곳곳을 돌아다녀도 전혀 보이지 않는 친우의 모습에 망연자실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주변에 다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게야. 설마 상층에 있는 건 아니겠지. 올라가면서 만날지 누가 알아.
..너무 성급하게 굴었나.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며 집무실로 돌아가려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ㅏ..ㅇ..?'
'?'
누가 부른 것 같은데.
'다자이.'
또 반복된 부름. 자신을 호칭 없이 부를 사람은 흔치 않은데.
기대 반 실망 반 점점 커지지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어느 간부가 날 찾는다 들었는데 그게 너였군.'
'!-..오다..사쿠. 그으, ..오랜만일세. 어디 가있었던겐가.'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말이지. 다녀오느라 잠시 공석이였다.
그런데 무슨 용무로 날 찾은 거지?'
그다. 그렇게 난리치고 다녔던 게 소용 있었나. 뭐라 말하면 좋을까.
오랜만이라니, 겨우 만나서 한 말이 오랜만, 더군나 실제 이 시간대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것도 아닐 텐데도. 자네는 아직도 그 얼굴 그대로군.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모습그대로야. 용무? 용무야 있지.
그저 자네를 만나러온 것뿐이야. 다시 사라지기 전에.
..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무리 꿈일지라도 그걸 말할 용기는 없었다.
누가 감히 소중한 것들을 잃고 끝내 헤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대라면 지독한 악담과도 같을 테지.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는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친우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서글픈 표정을 지었나보다.
'무슨 일 있었나? 표정이 좋지 않군.'
'아냐, 아닐세. 아무 일도 없었어.'
'지금 말하기 어려운 주제라면 나중에 말해도 된다.'
'...후후, 사실은 딱히 용무는 없고 자네 얼굴이나 보러온걸세'
이렇게 마주보고 대화하기도 참으로 오랜만이고해서.
'그렇군.'
'..뭔가 애틋한 대화이지만 마주보고 대화한지 단 하루 지났습니다, 다자이군.'
아. 이게 누구야. 잠시 친우의 얼굴만 보러온 것뿐인데 예상외의 만남이 되어버렸는걸. 팔에 두툼한 서류봉투를 안고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다가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안고였다.
만나리라는 것을 예상치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설마 만나겠거니 생각했건만. 자네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군.
저리도 뻔뻔히 이 대화에 녹아들며 다가오는 자네가 참 역겨워. 평소라면 웃으며 맞받아쳐야할 타이밍에 멍하니 어두운 표정으로 서있는 자신을 쳐다보고 움찔 하는가 싶더니 오다사쿠와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중요한 얘기였다면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다자이, 안고다. 역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으응, 아무 일도 없었다니깐. 그렇지, 마침 다 같이 모인 때에 할 말이 있는데.'
밤에 같이 술 한 잔 할까.
'..나야 상관없다.'
'저도 오늘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기로 하고. 하하, 지금 조금 바빠서 말이야. 먼저 가겠네.'
아직도 의문을 띄운 두 얼굴을 뒤로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정확히는 피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시기라해도 진실을 알고서는 껄끄러워 마주하기 불편했다.
결국에는 등을 돌리게 될 텐데.
| _in_Lupin_ |
어느 때보다 고요한 공기. 늦은 시간이라 손님도 없는 한산한 가게이다.
아직까지는 아무도 오지 않아 혼자 앉아 잔을 비우고 있었다.
후우, 자신은 어쩌자고 이 약속을 잡아버린 것인지. 다시 한 번 더 같이 잔을 기울이기라도 원했다는 건가. 설마. 분명 말이 헛나온거겠지.
적어도 표정관리라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과 다른 표정이 지어졌다.
원래라면 수월했을 터인데. 마침 익숙한 발걸음소리과 목소리가 들렸다.
야속하게도 자네가 먼저 오는군.
'먼저 와 계셨군요.'
'시간이 비어서말이지. 어서 와서 앉게.'
'오다사쿠씨는 아직입니까?'
'응, 생각보다 늦게 오는 것 같아.'
아까 전에 만났던 때의 일 때문일까. 어색한 기류가 없어지지 않았다.
이 상황이 불편한 건지 안고는 받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먼저 말이라도 걸어야 이 어색함이 사라지겠는걸.
오다사쿠가 와도 이런 분위기라면 사양이다.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는 상황 속에 먼저 입을 열자 흠칫 놀라며 눈치를 보더니 흐트러진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어색하게 돌렸다. 어지간히 긴장했나본데.
'..아까전 일은 그냥 잊게. 감기 기운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요즘 추우니 몸조심하세요.'
당신 같은 사람이 감기로 자리를 비우면 손해가 크니깐요.
'자네는 그 생각뿐인가? 마치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시기인 것처럼 말하는군.'
'예..? 전 조직 전체를 보고 한 말입니다.
간부가 얼마나 큰 직책인지 다자이군도 알고 계시지 않스...'
'그럼-, 알다말고. 장난일세, 장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치지 않아도.'
'...감기기운은 벌써 다 사라진 것 같군요.'
후후, 역시 자네 놀리는 건 재밌어. 그 당황한 표정이라곤.
볼 재미는 다 본 것 같아. 벌써 힘이 빠졌는지 망연자실하게 늘어져있는 안고의 모습에 키득 웃었다. 너무 정곡으로 찔렀나.
사소한 심술이였다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사이에 지각생도 합류하자 우리 셋은 더 빠르게 술잔을 비워나갔다. 이 순간이 현재까지도 이어지면 좋았을 텐데. 영영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편이 나을 지도 몰라. 꿈을 깨면 또 다른 악몽이 자리 잡고 있으니.
* * *
꿈을 꾸면서 느낀 것은 점점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는 감각이였다.
초반에는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흘렀던 시간이 이제는 하루가 1시간과도 같았고 원하면 1분 만에 지나가는 일도 잦았다.
더해 자신의 두려움만 커져가고 있었다. 꿈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나.
이제는 깨어야하는게 아닐까. 깨어난다 해도 이와 같은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
더 이상 머물러 있다가는 친우의 죽음도 다시 보게 될지도 몰랐다.
현 상황이 지금 그랬기에. 납치된 안고에 명령을 받은 오다사쿠.
그리고 모든 걸 끝에야 눈치 채는 자신까지 전의 흐름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눈앞에서 쓰러진 오다사쿠에 그에 뛰어가 붙드는 본인.
이왕 꿈인거 다 망쳐 놓을 걸 그랬나. 그래도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린 수법에는 빠져나갈 수 없었겠지.
이제는 꿈에서 깨길 바란다. 사람 변덕이 어디 가겠는가.
그때그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게 사람인데. 당장의 행복에 눈이 머는 것도 오랜만이라 생각하면서도 씁쓸히 눈을 감았다.
꿈이던 현실이던 둘 다 악몽이라면 꿈에서 깨는 상황보다도 그 장면을 다시 보게 되는 상황이 더 지독한 악몽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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