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시 | 줄리엣의 선율COLLABORATION/WRITING 2018. 12. 28. 11:40
1.
『오, 나의 사랑. 나의 아내. 죽음이 당신의 죽음을 빼앗아갔을지언정 그대의 아름다움은 빼앗아가지 못했구려. 죽음도 그대를 정복하지 못했소.』
달이 누웠군요. 항상 시선을 위로 향했건만, 오늘부터는 이만 고개를 숙여야겠습니다. 방금까지 귀뚜라미 소리가 귀를 때렸건만, 지금은 크리스털의 탁음이 울립니다. 당신이 잠시 죄의 멍에에서 벗어난 이후 그대에게 꼭 맞는 장소를 꾸몄답니다. 시부사와 군의 고상한 취향을 흉내 내어보았습니다만, 당신의 마음에 들는지. 아마도 눈을 뜨면 작게 불평을 읊조리실 겁니다. 그러나 그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구원의 손길이 당신의 호흡을 가리었으니, 부디 안심하시길.
당신의 제안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보름달을 가로등 삼아 신출귀몰하게 나타난 그대는 늘 그렇듯 용건만을 들려주었죠. 이미 끝마친 대화이니만큼 간단히 기록하겠습니다.
“시부사와 타츠히코, 그 남자를 제거할 거야. 자네의 협력이 필요해.”
“다자이 군이 직접 절 찾아주시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군요. 덕분에 밤 기도를 할 수가 없잖습니까. 차라도 내올까요?”
“당치도 않은 소리. 마인에게 목을 내주는 건 질색일세.”
“후후, 너무도 하셔라.”
제가 그의 오랜 지인인 사실은 이미 아실 텐데요? 엄지를 물어뜯던 것을 멈추고 살풋 웃자 일그러진 당신의 미간이 달빛에 물들었습니다. 불쾌감이 속을 긁어대니 토악질이 나올 수밖에요. 이를 인식하고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비릿한 미소를 짓고는 체스게임을 제안하셨죠. 가볍게 승낙하고는 이반에게 체스판을 가져올 것을 일렀습니다.
“다자이 군, 우선 당신의 목적을 알고 싶습니다.”
“난 두 번 말하지 않네.”
“당신의 진정한 목적을요. 그를 제거하면 미래적인 차원에서 요코하마는 안전해지겠지요. 그러나 쥐 또한 당신이 지키려는 장소를 어지럽히는 존재가 아닙니까.”
“흥, 확실히 모순적이기는 하지.”
“모순적이기에 구미가 당깁니다만, 다자이 군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확실하게 의사를 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참 특이한 취향이군.”
이윽고 노크 소리가 들리자 대화가 잠시 끊겼습니다. 체스판이 탁자에 펼쳐지고, 히비스커스 향이 방안을 채웠습니다. 이반은 당신이 재미있다는 눈치더군요. 저와 사뭇 다르면서도 비슷한 그대의 분위기가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지켜보다 검지로 잔을 세게 밀어내고는 탁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았습니다. 당신은 당혹스러웠겠지만, 이해해주세요. 둘만의 대화가 고팠던 것뿐, 불순한 의도는 없었습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집사가 화들짝 놀라고, 제 검지는 당신의 굳게 닫힌 입술을 어루만졌습니다. 지금밖에 다시 만져볼 일은 없겠지만, 부드러웠습니다. 아, 이거 실례. 그러나 당신에게 거짓을 고하고자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랍니다. 이반이 나간 후, 곧바로 일어나 문을 잠그고 돌아오니 당신은 저를 조롱했었죠.
“정정하겠네. 자네의 취향은 참으로 고약하다니까.”
“마음이 동했거든요. 선량한 순례자는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답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낭만은 그만두게.”
검고 흰 체스말이 놀려지는 가운데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를 따분함과 고독에서 해방해주고자 하는 게지. 구원? 난 그렇게까지 친절한 인간도 아니고, 사후세계도 믿지 않아. 그러나 시부사와는 구원을 갈구하는 파우스트다. 백기린으로 불렸던 자는 모든 이치에 통달했고, 그렇기에 지상의 음료와 음식에 만족하지 않아 악마와 계약한 셈이지. 적어도 그는 그렇다고 생각할 걸세. 답지 않게 조직을 구성하여 요코하마의 뒷세계를 어지럽히는 것에서 나아가 ‘백설공주 자살’을 일삼으며 갈증을 해소하려 들면서, 자신에 대해 망각하고 있어. 그래서, 그 악마는 누구일까?
“제가 메피스토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신자로서 불쾌한 비유처럼 들리는군요.”
“그럴 가능성을 감안한 건 사실이네만. 어찌 되었든 그의 순간은 멈출 때가 되었어. 자네라면….”
“좋습니다. 다자이 군과 손을 잡도록 하죠. 다만, 저도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쉽게 승낙할 줄이야. 뭐, 들어는 보도록 하지.”
“최근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기 시작해서요.”
“벌써부터 불쾌한데.”
다자이 군, 당신이 모순적이기에 구미가 당겼던 겁니다. 저는 그대를 알고 싶습니다. 곧 다시 적이 될 당신을 파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날만큼은 그저 죽음과 혼인한 줄리엣을 관찰하는 것이 끌리더군요. 당신은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우면서, 삶의 경계에 머무릅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어둠에 녹아들었으면서, 빛의 세계에서 누군가를 구제하고자 합니다. 광대짓을 하며 사람들을 농락하는 듯 우스꽝스러운 면을 보이면서도, 꿈을 꾸는 듯 공허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습니다. 그래요, 나의 동족이여. 나는 당신 그 자체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백설공주가 신의 곁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당신을 이 눈에 담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다자이 군이 읽을 리 만무하지만, 유희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요.
2.
『잔이 로미오의 손에 꼭 쥐어져 있네. 독약을 마시고 방금 돌아가신 거야. 참 무정도 하셔라! 다 따라 마시고, 뒤따라가지도 못하게 단 한 방울도 남겨 놓지 않으셨단 말인가? 그럼, 당신 입술에 키스할래요. 혹 독약이 입술에 아직 묻어 있다면 생명의 묘약같이 날 천당에 보내 주겠지.』
오다 사쿠, 자네와 건배한지 꽤 오래되었군 그래. 조만간 「루팡」에 방문할 생각이야. 마피아에서 나온 이후로 그곳에 거의 방문하지 않은 것 같네. 자네의 생각보다 훨씬 멋진 꿈을 꾸고 있거든. 응, 맞아.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 실은 처음 두 눈으로 빛을 마주했을 때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네. 참 이상하지? 눈이 따가울 지경이어야 정상인데. 아, 이제 슬슬 졸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와중에 자네의 목소리가 들린다네. 틀림없이 환각일 테지.
오다 사쿠, 최근에 자네와 나누었던 백설공주 이야기를 기억해냈다네. 그녀는 이 세계가 품고 있는 절망에 독사과를 깨물고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말했었지.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왕비는 어째서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내밀었는가. 그 여자는 공허함을 참을 수 없었을지도 몰라.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고, 웅장한 성을 지어도 아름다운 자신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지. 그러다 거울이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다며 그녀를 부추겼고, 거듭되는 공허를 이기지 못해 그만 독사과를 딸에게 먹이고 말아. 이것도 일종의 절망일까? 모녀의 절망을 다룬 동화라니, <백설공주>는 굉장한 걸작이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백설공주는 결국 살아난다는 거야. 행복한 결말이라고들 하지만, 자살에 실패하는 건 역시 아쉽잖아? 유리관에서 조용히 스러지는 것이 그녀의 절망에 어울리지만은, 동화의 결말에 어울리지 않으니 당연지사이려나.
오다 사쿠, 왕비는 자신의 순간이 아름답게 멈출 때까지 공허한 파괴를 반복할 걸세. 이를 그대로 놔두었다간 요코하마의 혼란이 다시 시작될 거야. 그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성 안에 가두기 위해서는 마법 거울이 필요해. 거울의 속삭임은 왕비의 욕망을 좌지우지하는 촉진제와도 같으니, 한 발 앞서 그것을 벽장에서 떼어놓아야지. 그런데 거울은 거울이더군. 그의 시선은 나를 옭아매지만, 그러면서도 날 닮아 있어. 내 모습을 비추는 것인지, 아니면 그 자체가 나와 같은지 알 수 없다네. 거울을 계속해서 응시하다보면 생기라고는 없는 두 루비를 긁어내고 싶어져. 이상하기 짝이 없는 장식품이야.
오다 사쿠, 자네라면 그 거울을 보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네. 그 작자는 마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명을 가지고 있지만, 내게는 자네가 가장 대단한 사람이니까. 나는 일찍이 자네가 속한 빛의 세계에게 미움받는 인간이었지. 그러나 지금은 빛에 타죽지 않고 태양을 바라보고 있네. 내가 자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둠에 완전히 잠식되어 인간을 유혹하는 마인이 되었을지도 몰라.
오다 사쿠, 자네의 말대로 선악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인간의 내면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네. 정확히 말하자면 결과적으로 다를 바가 없으니 무의미하다는 거야. 스스로 선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어느 세계에서는 악으로 정의되고, 결국엔 하나의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어. 반대로, 악이라고 제재되던 것이 누군가를 구원하는 실마리로서 이상적인 세계를 재건할 수 있네. 그래, 꿈꾸듯 몽롱하게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오다 사쿠, 마인이란 작자는 나와 닮아있다고 했지? 그는 나처럼 선과 악을 자각하고 있지만, 죄와 벌이라고 칭하며 그 둘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자야. 마인은 ‘죄와 벌’이 난무하는 인간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잘 파악하지. 그리고 인형사로서 이른바 선이라는 이름의 실로 희생양의 팔다리를 묶고는 구원을 속삭인다네. 신의 시선과 닮아있지만, 악마와도 같지 않아? 그가 마인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이것일세. 선과 악이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같은 개념이라면 신이 곧 악마고 악마가 곧 신이니. 참으로 불쾌하게도 나는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있어.
오다 사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마인을 이용해야하는 걸세. 다음에는 거울을 조각조각 깨뜨려야겠지만,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서 얼마간은 마인의 유희에 놀아날 예정이야. 그에게 협력을 요청하러 적진을 찾았는데, 예상보다 쉽게 승낙하더군. 그를 완전히 읽어내는 건 불가능하기에 받아들였어. 그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이후에 짬이 난다면 이유를 들어봐야겠군. 마인은 최근에 자신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기 시작했다며 내가 삼 일간 줄리엣이 될 것을 요구했네. 무슨 꿍꿍인지 당최 모르겠어. 그 말을 듣곤 혐오감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더라고. 정황상 그 작자가 나에게 아직 해를 끼칠 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오다 사쿠, 맥박이 멈추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죽는 건 아닐세. 이미 말했다시피 백설공주는 살아가니까. 잠시 꿈에서 깨어나는 것뿐이야. 아니, 자네의 모습이 아른거리니 아직 꿈속이군. 테트로도톡신이라고 했던가. 줄리엣처럼 잠시 가사상태에 빠지는 약을 마셨다네. 의식이 흐려서 제대로 말을 이어갈 수가 없어. 자네의 이름을 이렇게나 자주 부른 적이 없는데, 너무 많이 부른 것 같아. 오다 사쿠, 오다 사쿠. 자네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지만 내가 자네를 찾아냈어. 어서 와, 오다 사쿠. 곧 따라가겠네.
3.
『혹시나 저 망령 같은 죽음의 귀신조차 그대에게 반해 그대를 암흑 속에 가두어 정부로 삼자는 것은 아닐까? 팔아, 마지막 포옹이구나! 입술아, 생명의 문아, 정당한 키스로 도장을 찍어 만물을 독점하는 죽음에게 알려주련다!』
줄리엣이 잠든 지 일곱 시간. 그동안 관을 짜는 것은 제게는 손쉬운 일이었습니다. 애절하도록 흰 장미가 깃들 장소는 당신이 찾았던 미술관. 검은 도마뱀과 함께 찬찬히 그림을 감상하셨던 그 장소입니다. 마침 그대와 어울리는 작품이 전시되었다는 소식에 뒤늦게 발걸음을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잔잔히 흘러가는 물 위로 눈이 내린 풍경이었습니다. 원 모양의 견고한 그릇이 떠다니다 다른 그릇에 쨍 부딪히자 영롱하게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래요, 이 작품은 당신의 이능력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시부사와 군에게 자문하지도 않았을 테지요.
마찬가지로 푸르게 둥그런 연못 가운데 백장미가 잠들어 있습니다. 넓은 유리창 사이로 달빛이 새어나오자 작게 벌려진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보입니다. 조금 고생스러웠지만, 제 오랜 지인으로부터 줄리엣의 예식 의상을 받아 관 속에서 꿈꾸는 인형에게 입혀보았습니다. 눈꽃이 흩뿌려진 망토 위로 자색의 수가 춤을 추는 역동적인 모양새가 당신과 대비되더군요. 물 위로 가볍게 떠 있는 관에서 푸른 장미들을 벗 삼아 죽어있는 당신은 아름다웠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달싹였던 입술은 로미오를 찾았던 걸까요.
순간이 멈춘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니 온기가 느껴집니다. 알 수 없는 희열감에 떨리는 손이 당신의 목덜미를 그러쥐다가, 첼로를 켜듯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아, 그러나 생명의 묘약을 삼킨 줄리엣이 노래를 부를 리는 없지요. 깊고 깊은 죽음은 어떤 맛이던가요? 알고 싶어졌습니다. 당신이 그리도 갈구하던 죽음을 갈취하려 입술을 포개자, 강한 힘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가쁜 숨이 혀를 농락하고, 거친 손길이 절 관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자네의 죄가 내 입술로 옮겨 왔군.”
“그렇다면 제 죄를 돌려받지요.”
“선량한 순례자의 입술을 뜯어버려야 직성이 풀리겠는데.”
물씬 풍기는 장미향에 취할 것 같아 고개를 돌리려다 턱을 잡아채는 당신에게 순종하고 눈을 마주했습니다. 고요히 일렁이는 다갈색이 끔찍하게도 마음에 들었지만, 본심을 토로하지 못하고 오히려 당신에게 되물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가요? 다자이 군은 죽음을 즐기지 않으십니까.”
“말도 안 되게 불쾌했으니 더 말하지 말게. 그리고 자네에게 죽는 건 사양이야.”
“당신이 스스로 약을 들이마셨으니 일종의 자살시도지요. 부러 취향을 고려해주었건만.”
“더 말하지 말라니까.”
“그래서, 로미오는 만나셨나요?”
말놀림이 끝나자마자 막혀오는 호흡에 눈을 절로 크게 떠졌습니다. 곧 미소가 제 입술에 찾아들었습니다만, 그 모습에 기분이 더 상했는지 줄리엣은 거칠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 입술을 정말 뜯어버릴려는 셈이었지요? 그대의 분노를 더 즐기고 싶었으나 더 이상은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마찬가지로 강하게 밀어냈습니다. 반항하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답니다. 그러나 당신은 제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 것 같더군요. 그대와 같은 혐오감에 본능적으로 밀어냈다고 생각하셨을 테죠.
“대체 의도가 뭐지? 로미오라도 흉내내고 싶었나?”
“그럴 리가요. 제가 당신의 로미오일 리가.”
“지금 이 순간은 자네가 로미오로군.”
“저는 줄리엣을 가슴 뜨겁게 사랑하지 않습니다만.”
“하, 자네가 그럴 리가. 난 로미오를 부르짖지 않아.”
어설픈 거짓말은 그만두세요. 눈꼬리를 휘어 화답하자 당신은 그만 시선을 거두었습니다. 어둑한 침묵 속에 유리 그릇이 맞부딪히는 소리만이 울렸습니다. 푸른 물을 헤엄치던 당신의 검지가 제 속눈썹을 스칠 때까지 말입니다.
“자네가 로미오인 편이 낫지.”
“불쾌하지 않습니까?”
“내가 줄리엣이라면 자네의 가슴팍에 칼을 꽂아넣고 싶거든.”
“불쾌하군요.”
“기회를 잡는 걸세. 로미오를 죽이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줄리엣이니까. 파리스도, 로렌스 신부도 로미오를 자멸시킬 수 없어.”
“농담치고는 살벌한데요. 저를 자멸시키고 싶으십니까?”
“가능하다면.”
아, 그 보드라운 살기를 기억합니다. 머릿속에 잔인하게 새겨진 줄리엣의 진심어린 미소가 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이 느낌은 필시 환희일 것입니다. 조용히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주체할 수 없어 몸을 일으키는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눈아, 마지막으로 보아라. 팔아, 마지막 포옹이구나. 입술아, 생명의 문아. 정당한 키스로 도장을 찍어 만물을 독점하는 죽음에게 알려주련다.
줄리엣, 저 가지 끝을 은빛으로 물들이는 달에게 맹세하건대, 당신을 반드시 구원하겠습니다.
'COLLABORATION >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틸 | 달려서 (0) 2018.12.28 청 | 홍연 (0) 2018.12.28 리페티 | 돌아갈 수 없는 세계 (0) 2018.12.28 CK | 검은 파도 (0) 2018.12.28 노아 | Mox Nox (0) 2018.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