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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 홍연COLLABORATION/WRITING 2018. 12. 28. 11:41
🔫다자이가 오다를 짝사랑합니다
🔫개인적인 다자이 캐해로 인해.. 자칫 신성모독(ㅜㅠ) 이라 느끼실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다자이가 신을 비판하고 존재를 계속 부정합니다.. 민감하신 분은 피해 주세요.
🔫퀄리티 죄송합니다 공포 6301자인데 2000자를 3주 4000자를 한시간 동안 썼네요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맑은 종소리가 실내를 울렀다. 정체된 공기를 장악하던 담배 연기가 훅 열린 문 밖으로 스멀스멀 흘러나감에 따라, 새로운 손님은 걸음을 잠시 멈춘 채 숨을 크게 들이켜 익숙한 나른함에 휩싸이며 스툴 부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검은 인영이 돌아보고는 손을 흔든다.
왔네, 오다 사쿠.. 오늘도 평소에 마시던 대로? 부탁하지. 오다 사쿠노스케가 발을 떼어 바 쪽으로 향하니 그제야 눈치챌 수 있던 두 가지 것이 보였다 - 하나. 놓여 있던 잔의 얼음은 이미 반쯤 녹은 후였고, 둘, 코트 자락은 구겨진 채 고정되어 진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오랜 기다림을 암시하는 주변의 물건들에 반해, 다자이는 오히려 더 밝아진 표정이었다. 오다의 미안한 시선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어. 해사하게 웃음지었다. 미안하군. 아냐, 안 오는 것보다야. 그건 그렇고..오늘따라 안고가 늦네. 이내 아쉽다는 목소리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안고는 마피아의 정보원이니.. 우리에겐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있는 거겠지. 역시 그렇겠지? 안고는 좋겠어. 우리가 아니면 누가 자신을 이리 신뢰해 주겠어? 그것도 마피아 안에서.
"그건 그렇고, 무엇을 하고 있었지?"
한 시간 쯤은, 오다가 주름진 코트 자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다린 것 같은데. 시선의 끝을 좆아 온 다자이가 옷을 반대쪽 스툴을 향해 넘기며 웃음지었다.
"글쎄.. 철학적인 생각?"
다자이가 턱을 괴었다. 암갈색 눈동자가 도룩 굴더니 이내 오다의 쪽을 바라본다. 잠시의 정적 후 입이 열렸다.
"오다 사쿠, 자네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아. 결국 모두 인간의 상상일 뿐이지."
"역시 난 자네가 좋아.. 난 신이 싫거든."
"왜?"
"신이라는 존재는 허구의 존재야.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함. 내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 제발 기회가 오게 해 달라는 절박함. 미지의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 별 추악하고 소름끼치는 감정들의 집합체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전지전능한 존재. 내 모든 죄를 용서하고 날 굽어살피고 날 사랑한다는 멍청한 생각을 가지게 해 사람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것. 신의 뜻대로. 신의 이름으로. 이런 거짓 믿음을 무슨 주장에서던지 말 앞뒤에 붙이면 옳고 정의로운 행동이 되기 마련이거든. 신의 뜻대로 널 처형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어? 결국 사람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 숭배받으면서 더욱 많은 사람을 탄압받게 만들어 죽음으로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이 신이고 종교야. 정말 신이 있다면 그것을 두고 봤을까? 그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분이 죄도 없이 이단이네 사탄이네 몰려 사형당하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을까? 정말 그런 신이 있다면 신 실격이지. 그렇지 않아?"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그렇지만 신이 몇몇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사실이죠."
전지전능한 존재가 내 뒤를 봐 준다는 생각은 묘한 안심을 불러일으키니까요. 다자이 오사무가 뒤를 돌아보았고, 사카구치 안고가 루팡에 들어서며 미소지었다. 제가 너무 늦었나요?
"아니야 안고, 별로 기다리지는 않았어.. 오늘도 마시던 대로? 그건 그렇고 자네가 그리 생각할 줄은 몰랐네. 흥미로워."
"무엇이요?"
"자네가 유신론자라는 것?"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굳이 따지자면 전 신이 없다는 쪽인걸요. 단지 신이 당신의 말처럼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은 아니라는 거죠. 몇백 명의 사람들의 삶의 의미가 되어 주는 것이 신에 대한 믿음..종교인걸요."
"처음부터 다 들었어?"
"예..도착은 아까 했는데 다자이 군의 말을 끊고 싶지는 않아서요."
"안고다운 배려네.. 그거 알아, 안고? 내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장 큰 증거가 있어."
"무엇입니까?"
"내가 아직 살아 있잖아."
또 무슨 헛소리세요. 오다 사쿠 씨. 보십시오.. 당신이 뭐라도 시비를 좀 걸어 주시라니까요.
"너무해.. 그치만 안고. 이번엔 정말 헛소리가 아냐."
"그러면요? 당신이 살아 있는 것이 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라니.. 신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당신을 싫어할 것이란 소리잖아요?"
"위대하신 신께선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지? 수많은 사람들이 내 죽음을 간절히 바라.. 나 또한 내 죽음을 바라고! 그렇다면 나의 죽음보다 개연성 있고 합리적인 선택이 어디 있나?"
"과연 당신의 죽음이 수많은 피해자들-불쾌하시다면 죄송합니다-의 구원이 될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지. 그래도 보통 우리에게 가족이 살해당했거나 팔려간 사람들은 죽어 버리라 저주하지 않나?"
"그런가요.. 최전방엔 잘 서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하루에도 골백번을 듣는 게 죽으라는 저주인걸. 봐..내 생존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에 대한 부정이 돼. 누군가 신이 날 죽여서 그들을 구원해주길 바란다면 유감이겠네.. 신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니, 애초에 존재 자체가 불투명한 존재에게 자신의 인생의 구원을 바라는 것이 멍청한 짓 아닌가?"
"아까도 말씀 드렸잖아요. 그 단순한 믿음마저도 누군가에겐 큰 힘이라니까요."
"역시 이해가 안 돼."
당연히 이해가 안 되시겠죠. 사카구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구원은 이곳에 있으니까요. 굳이 의지의 대상을 멀리서 찾으실 필요가 없잖아요? 그리고 그 다자이 오사무의 구원자는 그저 친구들의 대화를 멀뚱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사카구치가 아무말 않고 한숨만 내쉬자 다자이 오사무는 살짝 입을 삐죽이며 입을 다물었다.
"공기가 삭막해졌군. 건배라도 할까?"
오다 사쿠노스케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을 꺼냈다. 다자이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기꺼이. 안고도 옅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쨍,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트레이 독스에.
그러고는 잠시 정적이었다.
••••••
다시 말문을 연 것은 오다였다.
"다자이. 안고. 너희는 신을 믿지 않는다 했었지. 그러면 천국이라던가 인연이라던가.. 이런 것도 믿지 않는 건가?"
세상은 과학의 산물이지. 기분좋게 웃은 다자이가 손가락으로 잔을 부드럽게 쓸었다. 거의 안 믿어. 왜?
"사쿠라가 동화책을 읽는 것을 봤는데, 붉은 실이라는 속설에 관한 것이더군. 세상에 태어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가락에 붉은 실이 매인 채 태어난다고 해. 허무맹랑한 소리이긴 하지만 나름 괜찮지 않나 싶어서."
"어떤 점이?"
"그 인연인 사람들이 멀리 떨어지도라도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는 것이잖아. 기묘한 희망을 주는 말 아닌가? 다자이. 넌 실체를 증명해낼 수 없는 것에 의존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니, 네겐 역시 별 감흥이 없으려나."
아니.. 자네가 흥미롭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구차한 변명인데요? 안고, 쉿! 그래도 이건 꽤 로맨틱한 이야기네. 우리들 손도 어쩌면 이어져 있지는 않을까? 오다 사쿠. 안고. 잠시 손 좀 줘 보게.
"저희가 연인도 아니고. 이어져 있을 리가요?"
"마피아 안에서. 말단과 정보원과 간부가 이리 우정을 나누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연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절대 평범한 사이는 아니잖나?"
"두 분이서만 하세요..전 빠질렵니다."
뭐야 안고, 재미없게. 다자이가 삐죽였고, 그걸 가만히 보던 안고가 픽 웃음을 지었다. 제가 어찌 두 분과 인연일지도 모른다고 즐겁게 시시덕거릴 수 있겠습니까.. 전 여러분을 배신할 몸인데요, 그런 기만도 없죠. 물론 말로 옮기지는 않았고 사카구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새 나라의 어린이는 어서 들어가 주무시죠. 당신도요, 오다 사쿠 씨."
"새 나라의 마피아가 아니라? 11시인데 벌써 들어갈 작정이야? 한잔만 더 하고 가자."
"제가 당신처럼 한가한 사람인 것 같습니까? 당신들 얼굴 보려고 겨우 시간 낸 거에요. 슬슬 들어가야죠. 3일만의 퇴근이 눈 앞에 있다고요."
"살아는 있는 것 맞지?"
"보시다시피요."
몇 마디 짤막한 대화를 나누곤 사카구치 안고가 먼저 루팡을 나섰다. 금세 오다 사쿠노스케가 겉옷을 챙겨 입었고, 마지막까지 늦장을 부린 건 다자이 오사무였다. 잘 가. 조만간 다시 보자.
••••••
조만간 다시 보자. 다자이 오사무가 헤어지며 한 말은 당연히 곧 실현되었다. 정확히 세 번의 만남이 더 있었다. 그 이후로 세 명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셋 중 한 명이 배신했고, 다른 한 명은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남은 한 명의 수중에 남은 것은 사진 한 장 뿐이었다.
••••••
오다 사쿠. 오다 사쿠노스케.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내가 정말로 사람을 살리는 길을 걸을 수 있을 거라 믿는 거야? 다자이 오사무의 왼손이 오다 사쿠노스케의 흉부를 꽉 눌렀고 굳어 가는 피가 조금 더 흘러나와 손을 적셨다. 손등에까지 점점이 물들어가는 핏빛을 보며 다자이 오사무가 고개를 숙였다. 제발 대답해줘. 겨우 그 정도만 말해 놓고 나보고 평생을 연명해 나가라는 거야? 너무해.. 정말 너무하잖아. 내가 자네의 말을 무시하지 못할 것을 알잖아. 그런데 왜 복수하라고 해 주지 않은 거야. 왜 계속 살아 나가라고..왜? 시체는 말이 없다. 얼굴 가엔 아직 연기가 피어 오르는 담배가 하나 떨어져 있었고 다자이 오사무는 그 담배를 물었다. 매캐한 연기가 폐를 태우자 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뚝. 한 방울이 왼손에 떨어졌고, 다자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자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안 될까?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세상은 좁았다. 어린 나이에 마주했던 제 스승 모리 오가이는 서둘러 그의 눈에 붕대를 감아 작은 세상만을 보게 만들었다. 주변의 빛이 조금도 새어들어오지 못하도록. 빛이 마음을 감화시키지 못하도록. 결국 나중에 똑바로 세상을 응시하더라도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랐다. 그래야 자신의 첫 창조물이 완벽한 도구가 되니까, 완벽하게 벼려진 칼날이 되어 마피아의 개가 될 테니까..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이 볼 수 있던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 믿었고 아무리 의심스러워도 그것을 부정하고 살았다. 그 편이 더 편하기도 했고 굳이 내가 빛을 보아야 하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인간의 밑바닥이 좀더 내게 사람이 살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아낼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세상은 자신의 친구를 죽였다.
등더리에 와 닿는 서늘한 돌의 감촉이 도드라졌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니 바람이 얼굴을 부드럽게 쓸며 오른쪽 눈을 감싸안았다. 오다에 의해 띄인 눈이 시려 왔다. 다자이 오사무는 양 눈을 전부 감고 잠시 손을 뒤로 해 묘비를 쓸었다. 파인 자국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고, 곧 오다 사쿠노스케 하는 글자가 새겨졌다.
너는 세상에게 죽었지.
나는 너를 잃었고.
자신의 세상은 이미 깨졌다. 의지할 대상 하나 없이 맨몸으로 나앉은 기분이었다. 지금 살아 있을 이유는 유언을 따르기 위해. 단 하나 뿐이었다.
네가 내 말을 따르다 죽으면 너와 함께할 수 있을까?
문득 오다가 죽기 몇 달 전 대화가 떠올랐다. 다자이는 신이 존재한다면 날 죽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이 너무 짧았나? 내게 죽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단순히 내 죽음이 아닌 그보다 더한 고통을 바랐고 신이 그것을 들어준 것일까? 이제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지옥에 갈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사라지던 어찌 되겠지. 붉은 실… 홍연.. 그게 정말로 이어져 있는 것이고 오다와 내가 인연이었다면 내가 죽은 후에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아니.. 어쩌면 다음 생에 다시 보게 될 지도 모르지. 다자이는 웃음이 픽 터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너무했어. 네가 죽으러 가던 길 내가 최대한 말렸을 때 자넨 절대 칼을 거두지 않았지.. 제발 죽지 말아달라 했을 때 내 뺨을 쓰담고 미안하다 하면서도 결국 날 바라봐 주지 않았고... 좋아했어. 그렇지만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아이들과 그들과 함께할 소설가로서의 미래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 미래가 깨진 순간 네가 죽으러 갈 것을 알았음에도 제대로 말리지 못했어. 내가 억지로 죽지 못하게. 가지 못하게 하면 네가 날 증오하게 될까봐. 내 모든 것은 너였는데 사라져 버릴까봐. 겁이 났었던 모양이야. 결국 그 망설임과 두려움의 대가로 자넨 죽었지.
우리가 함께했던 나날들은 내겐 빛이었고 행복이었나 봐. 눈부신 우리의 날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이제 다신 돌아올 수 없게 되었지.. 나는 자네가 우리에게 말해준 속설을 믿고 싶어. 우리의 손에 붉은 실이 묶여 있으면 좋겠어. 생과 사의 벽 따위에 막히지 않는 인연이 우리를 이어 주면 좋겠어. 내가 죽은 후에. 어쩌면 다음 생에 자넬 찾을 수 있도록..
다자이 오사무는 말을 멈췄다. 하늘은 불쾌할 정도로 맑았다. 왼손을 옷에 살짝 문질렀다.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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