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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리섬 |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글자
    COLLABORATION/WRITING 2018. 12. 30. 11:22

    이 글에는 캐릭터붕괴 요소가 있고, 담배가 나옵니다. 혹시 싫으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특전 다자이, 츄야. 15스포일러 요소가 존재합니다.

     


     

     바람이 적당히 흩날리는 초겨울이었다. 나카하라는 외투를 흩날리며 걷고 있었다. 반만 드러난 팔의 맨살에 닿는 바람이 춥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밤하늘은 잠든 상태였다. 무슨 이유로 성내고 토라져 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밤길을 비춰주지 않는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새삼 생각해보면 달은 자기 맘대로인 것 같았다. 혼자 기분이 좋으면 꽉 찬 보름달로 모습을 보이고, 기분이 안 좋으면 몸이 갉아 먹힌 채로 보인다. 아예 안 보이는 때도 있다. 본인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게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제멋대로인 어린아이 하니까 누군가가 떠올랐다. 정말로 제멋대로이고,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징징거리거나 질린다는 표정을 하고, 머리가 좋은 점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잘 골려 먹고, 생각하니까 좋았던 기분이 갑자기 확 나빠졌다. 땅을 부술 듯이 차도 나빠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진 않았다. 모자를 잠시 벗고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다가 다시 돌아오자 모자를 썼다. 네온사인이 드문드문 보이고, 물에 비친 듯 흐릿한 조명들이 가득한 거리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다들 안에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있는 건가,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고 고개를 슬쩍 갸웃했다. 눈에 있던 초점은 가신 지 오래였다. 아니, 얼마 안 됐지만, 체감상 그런 거였다. 갑작스러운 파트너 손실이었다. 오탁을 제어해줄 사람이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랐다. 연락도 두절됐고, 모습도 감췄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사진하나 남겨두지 않았다. 평소에 있을 때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내쉬는 모습만으로도 역겨워서 어디든지 제발 사라져버리라는 소망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진심은 아니었다. 곁에서 놀릴 사람이 사라져버렸다. 그 공허함이 이리 클 줄은 전혀 몰랐다. 진짜로 사라져 버릴 줄은 몰랐다. 목 안으로 앓는 소리를 내고 길을 걸었다. 임무 이외에는 혼자 걸었는데, 마치 임무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곁에 걸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공허했다. 임무가 끝나면, 항상 오늘도 죽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들으면 짜증이 났다. 명령이 있어서 전하러 갈 때는 자거나 뒹굴거리고 있지, 키 작다고 패션 이상하다고 놀리지, 여하튼 짜증이 확 치밀어오르는 점이 한둘이 아녔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트집을 잡고 꼬투리 잡고 놀려서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개 같은 녀석이었다. 더 욕하고 싶었지만, 욕이 아까울 정도였다. 뱀 같이 웃는 걸 보면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 항상 유치하게 꼬투리 잡는 말에 무시나 욕으로 받아치곤 했다. 직접 때리진 못했다. 때리면 항상 얍삽하게 피해갔다. 눈을 감으면 마치 시라도 지을 것 같이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정작 나오는 말들은 중요성도 심각성도 전혀 없어 보였다. 나카하라가 본 바로 제일 진지한 표정은 눈에 생기도 없고 누군가를 내리깔아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뿐이었다. 임무를 할 때 보이는 모습뿐이었다. 공과 사가 다르듯이, 어린아이의 모습은 싹 가시고 최연소 간부의 모습만을 보인다. 자비 없고 냉정하고 가차없는 모습, 뾰족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잔인함, 건들면 바로 죽여버릴 것 같은 살기로 몸을 감싼 모습. 다자이의 적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행은 적이 다자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다자이 본인이 정말 잘 알려주고 있었다.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다자이만 있으면 홀리기라도 했는지 부하들은 일사천리 일을 처리하고, 그사이에 보이는 다자이의 살기는 말도 필요 없었다. 조금만 더 커지면 보스의 목을 베어버리고 자신이 보스가 될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임무가 끝나고 나면 일이란 건 정말 싫다는 그냥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다자이의 적, 즉 외부인들은 다자이의 겉에 붙어있는 살기만 알고 정작 내부는 알지 않는다. 하기야 일을 할 때 어린아이의 모습은 저버리니까. 오히려 한쪽 눈을 가린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따름이었다. 붉은 달이 비춰주는 다갈색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만약 두 쪽 다 보였으면, 정말 악마가 따로 없었다. 가끔 아군까지 해칠까 봐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이 날아가는 총알 사이에서 평온한 표정으로, 숨결 변화 하나 없이 서 있었다. 광기로 싸인 미친 자, 이 단어는 다자이 오사무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는 건 다자이를 처음 보는 사람만 생각할 수 있었다. 고양이라 해도 이리 얄밉고 귀엽다는 생각이 1도 안 드는 고양이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자고 있어도 엉덩이를 뻥 차서 빼액 울려버리고 싶었다. 발바닥젤리만 쫍쫍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뺏어서 손을 콰득 물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으 할 정도로 싫었다. 어떻게 파트너를 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정말 흔들림 없이 비즈니스 관계로 파트너를 했다는 게 신기했다. 아니, 비즈니스 관계라서 그런 건가, 나카하라는 미간을 좁히다가 금방 폈다. 미간을 펴도 피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인상은, 다자이와 다른 길의 살기를 내뿜었다. 사실상 다자이가 곁에 없어도 나카하라는 나카하라대로 매우 무서웠다. 비록 키는 작지만, 그 몸에서 나오는 살기는 한 번 경직될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중력 술사다 보니 언제 달려들어 배를 뚫을지 몰랐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달리 보면 보스의 카드였다. 필요할 때 내놓고 필요 없으면 치우고, 다자이 역시 그랬다. 어디까지나 보스의 카드였고, 다자이는 그에 대해 불만족한 듯했다. 카드라는 존재에 대한 불만이 어린앳적인 태도에서 드러났다. 항상 볼만 부풀고 투덜거리고 삐진 듯 흥흥거리고, 순 자기 맘대로였다. 보스 앞에서만 네라고 하고 말 듣는 척하지, 실상은 불평불만만 줄줄 늘어놓고 있었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참으로 답이 나오질 않았다. 옆에 있으면 정말로 짜증 나고 그냥 뻥 차버리고 홀로 갈 길을 가고 싶었다. 그만큼 싫었다. 어딘가로 확 꺼져버리거나 정말로 입에 담던 자살에 성공해서 영영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게 오래됐다. 전에도 지금에도. 옆에 있으면 동기부여라도 해주고 싶었다. 빈말이지만. 죽길 바라는 건 진담이었다. 항상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무리에 본인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밥 먹듯이 중얼거렸다. 듣다보면 항상 진절머리 나고 바늘이랑 실이 있었으면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단어라도 안 들리게. 성대 자체를 없애야 효과가 있는 건 나카하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오사무는 자신의 성대를 없애라고 내어줄 그리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볼 테면 해보라고 도발하는 게 다자이었다. 죽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점이 죽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웃는 사람 얼굴에 침 못 뱉는 건 아니었다. 남 실컷 놀려대고 이죽거리는 모습을 보면 참 더러워서 퉤 뱉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뱉으라고 대놓고 말하면 처음엔 선뜻 망설인다. 하지만 침 뱉는 건 닦으면 끝이었다. 하지만 살인은 죽으면 끝이다.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것이다. 마피아는 원래 적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바로 죽였다. 하지만 동료고, 파트너였다. 다자이가 없으면 나카하카를 오탁을 못 쓴다. 오탁을 제어해줄 사람이 없어지고 만약 다자이가 죽으면 오탁을 쓰는 나카하라는 죽음이 확정이었다. 손만 덜렁 들고 와도 오탁은 해제되지 않는다. 다자이의 영혼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다자이가 살아있는 상태로 나카하라를 건드려야 오탁이 해제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유일하게 자신의 오탁을 풀 줄 아는 상대가 죽길 바라는 것이니, 반어법이었던가. 본인도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다자이를 죽이는 건 나카하라에게 자살행위였다. 오탁을 쓴다는 건 목숨을 버린다는 일종의 의미였고, 다자이는 그런 나카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다자이와 같은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카하라는 하품을 하고는 고개를 위로 올렸다가 푹 숙였다. 살짝 굳었던 목뼈가 다시 풀리는 소리가 났다. 초커를 장시간 동안 차서 그런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코를 덮는 앞머리를 건드리다가 문득 장갑에 시선이 갔다. 가죽장갑도 아니고 그냥 누가 보면 낡은 듯한 면장갑이었다. 손쉽게 벗을 수 있었다. 오탁을 쓰기에 최적화된 장갑이다. 가죽장갑이었다면, 벗다가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컸다. 보통 임무의 중요성은 속도였다. 누가 먼저 공격하느냐가 아니었다. 공격을 먼저 한다 해도 그게 빗맞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신속성과 정확성, 하지만 속도가 중요했다. 그로 인해서 나카하라의 이능력이 어떤 때로는 참으로 유용하다. 닿은 사람의 중력을 조절하니까 속도 역시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다자이의 손아귀 안에 있으면 무용지물이다. 인간실격 그 자체인 다자이는, 모든 이능력을 무효화 할 수 있다. 제아무리 강한 이능력이고, 정말 세계를 붕괴시킬 정도의 강한 이능력조차 무효화시킨다. 다만 무효화된 이후 잔해는 여전히 남아있다. 더 큰 잔해를 남기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다. 마피아로선 이능력 면으로는 최고의 인재였다. 비록 체술은 중하위급이지만, 이능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므로 만약 내면까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놓고 싶지 않은 이능력자 1순위일 게 뻔했다. 하지만 다자이는 그 1순위라는 것도, 간부라는 것도 금방 내칠 정도로 가벼이 여겼다. 애초에 마피아라는 직종이 질렸으면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저 마피아를 나간, 배신자가 됐다. 종적도 감추고, 아무도 그가 어딨는지 모른다. 나카하라는 그에게 어디 있느냐고 평생 답장이 오지 않을 문자를 보낼 정도로 그리 구질구질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마음이 바뀐 게 있다면, 아까 몇 분 전에 받은 문자를 보고 나서 이번에 완전리 끝맺자고 다짐한 것이다. 장난스레 보낸 문자도 아니고, 사기문자도 아니었다. 루팡 근처에 있는 골목 가로등.이라고 단순하게 보낸 문자지만, 무언가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흩날리는 바람에 글자가 하나하나 분리되어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문자였다. 무시해도 괜찮다는 무언의 의미가 담김과 동시에 간절함이라, 참으로 모순적인 문자가 따로 없었다.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만약 눈앞에서 들었다면 확실히 말하라고 아니면 주둥이를 뜯어버리겠다고 하거나 목을 조르겠지만, 문자라서 그럴 수 없었다. 글자한테 따지면 뭐하겠는가, 그저 다자이의 말을 전한 것뿐인데. 문자는 그저 허공에 떠다니는 말뿐이었다. 잡을 수 없고 그저 듣고 보기만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붙잡아서 따질 수도 없다. 말을 전하는 일종의 수단이고,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루팡 쪽으로 옮겼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얼굴을 앞에 대고 하지 못한 욕이라도 좀 퍼붓고 싶었다. 욕만 실컷 하고 보낼 생각을 하니까 절로 신이 났다. 나카하라는 비릿한 미소를 입에 머금다가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고 발걸음을 멈췄다. 뭐야, 이러니까 다자이 녀석한테 가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잖아. 기분이 더러워졌다. 이를 빠득 갈다가 흘러내린 모자를 고쳐썼다. 눈을 끔뻑이고는 흔들리는 시야를 바르게 했다. 바람은 이내 싸늘해지고, 살을 찢을 것 같은 추위로 변했다. 나카하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외투와 머리가 흩날렸는데, 모자는 용케도 날아가지 않았다. 머리에 풀이라도 발랐나 하는 의심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역시 견딜 수 없는 지 모자가 간당간당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표정을 단단히 굳힌 채로 발걸음을 계속 재촉했다. 알게 모르게 젖어진 눈을 가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왜 그런 걸까, 분명 바람을 맞아서 눈이 건조해질 터인데, 왜 젖은 걸까. 평생 있어서 생리적인 눈물 외에 흘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조금 촉촉해졌다. 걸어가다 보니까 루팡에 다다르는지 코끝을 찌르는 향기가 달라졌다. 처음 맡아보는 향기였다. 무언가 낡은 것 같으면서도 서글픈 듯한 향기였다. 향기에서 서글프다는 단어를 쓴 것 자체가 좀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 말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모자를 꾹 누른 채로 고개를 들어보니 전혀 다른 옷이지만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은 다갈색의 더벅머리였고, 갈빛 구두로 바닥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추워서 그런지 몸은 움츠린 상태였다. 찾았다, 속으로 중얼거린 나카하라였다. 마피아를 나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최연소이자 모두가 두려워하는 간부 다자이 오사무가 아닌, 일반인 다자이 오사무였지만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다만 옆모습으로 보이는 표정이 조금 달랐다.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무언가를 담으려 해도 흘러나오고, 담아지기를 거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려가 있는 입꼬리는 금방이라도 땅에 닿을 것 같았다. 고개도 무거워서 툭 떨어질 것 같았고, 마피아에서 보인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카하라는 그런 다자이의 표정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굳어있는 표정인데, 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지. 미간을 좁히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가가서 발로 다자이가 기대고 있는 벽을 살짝 찼다. 이에 반응하는지 다자이는 고개를 돌리고 나카하라를 발견하자 눈을 슴벅였다. 여전히 돌덩이 같은 눈동자로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나카하라를 보면 아 츄야 오늘도 작네? 하면서 놀릴 게 눈에 선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아니, 왜 이제야 왔느냐고 책망하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나카하라는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의 반쪽을 슬 가리다가 이내 힘없이 손을 떨궜다. 바람은 둘의 만남을 인식했는지 사라져버렸고, 둘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얼굴을 안 본 지 얼마 안 됐지만, 10년 전에 헤어진 것 같았다. 막상 입을 열어도 할 말이 없을 게 뻔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 둘 다 그랬다. 이럴 거면 왜 만나자고 한 거지, 할 말도 없고, 얼굴도 보지 않고. 나카하라는 숨 막히고 복잡미묘한 정적을 깨고 싶었는지 발끝에서부터 꺼낸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살기가 가신, 본인 입으로는 온순하다고 할 수 있지만, 타인의 입으로는 여전히 사납다고 하는 눈매를 하고 다자이를 바라봤다. 다자이는 그 눈빛에 겁먹지도 않았다. 당연한 게, 항상 봐왔고 질리도록 오랫동안 봤기에 이제는 익숙했다. 다자이는 눈을 반 감다가 이내 말을 하려는지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다자이는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인물이었고 그 예상하는 것조차 알아차리는 무서운 존재다. 다자이 앞에서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 같았다. 하는 족족 다 예상해버리니까. 오히려 그 속이 투명하고 얄팍해서 알아차리기 쉽다는 발상은 해본 적이 없던 나카하라였다. 근육만큼 두꺼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 , 어디 있느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어? ]

     

    나카하라는 허를 찌르는 듯한 질문에 놀란 나머지 눈이 커졌다. 작아진 동공은 떨리고 있었다. 이게 정녕 다자이 입에서 나올 말인가? 나카하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말의 의미를 이해 못 한 듯했지만, 아니었다. 충분히 이해했다.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사라졌을 때 오히려 기뻐한 사람이다. 아끼던 술을 꺼내 먹기까지 했다. 그 대가로 차 하나를 날려버렸지만. 그런 나카하라가 다자이에게 어디 있냐고, 왜 나갔냐고, 무슨 일이 있던 거냐고 질문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연시하게 이질감이 들었다. 왜 다자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지, 왜 그런 거지.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다자이 오사무가 맞나 까지 생각했다. 미미하게 열이 오른 이마를 손으로 짚고 눈을 감았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날 것처럼 물어보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없는 가능성을, 마이너스인 가능성을 강제로 영점, 플러스로 만들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짧디짧은 실소를 흘리고 나카하라는 다자이를 흘겨봤다. 할 말을 잔뜩 생각해뒀는데, 다자이의 표정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다자이의 표정이 이상했다. 일평생 보지 못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눈은 투명했다. 저게 정녕 눈동자인가 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대답해주지 않으면 주저앉아 울어버리겠다는 무언의 협박이라고 할 수 없는 말이 담겨있었다. 분명 생각한 어조라면 협박이 맞지만, 협박이 아닌 것 같았다. 장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따듯해졌고, 나카하라는 이마에서 손을 뗐다. 손을 뗌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내가 네 녀석한테 그런 문자라도 날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은 그저 배신자로 남아있는 녀석한테?

    글쎄..그래도 파트너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해주는 게 더 좋은 방법 아닌가?

    좋은 방법? 대체 누구한테?

    나한테.

    네놈 좋아하라고 하는 일은 죽어도 싫어.

    너무하네,

     

    이상했다. 그 뒤로 흐른 정적이 이상했다. 입술이 떨리고 목이 꽉 막혔다. 누가 성대를 꾹 조이는 느낌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모자를 다시 눌러썼다. 머리가 조여서 아파질 지경이다. 평소라면 계속 반박을 하는 게 다자이다. 심지어 받아친 말들도 너무 어색했다. 다 하나같이 목소리가 떨렸다. 평소의 다자이가 아니었다. 능글거리는 말투도, 장난기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허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어색해 보였다.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카하라는 눈썹을 모으고 다자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바라본다기보다는 째려본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눈을 흘겨보다가 고개를 슬쩍 비틀고는 숨을 내쉬었다. 찬 입김이 새어 나오다가 담배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카하라는 문득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금방이었고,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벽에 기댔다. 다자이는 눈을 끔뻑이다가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숨을 들이마시며 위를 바라봤다. 고개도 눈동자를 따라갔다. 그래서 그런지 나카하라도 덩달아 다자이의 고개를 따라갔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하늘이었다. 그 하늘을 바라보는 오사무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담질 못했다. 다갈색의 눈동자는, 색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치고 보니까 다자이의 한쪽 눈을 가린 붕대가 없었다. 반창고도 없었다. 맨얼굴이었다. 나카하라는 그의 모습에 살짝 놀란 눈치였다. 항상 한쪽 눈을 가리고, 그 반대쪽 볼에 반창고가 붙어있었는데, 둘 다 없었다. 그렇게 보니까 조금 색달라 보였다. 묘하게 어린애라는 껍데기를 벗은 느낌도 났다. 이걸 언급했다간 온종일 눈여겨봤다는 게 말이 돼서 일부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제일 이상한 건 이런 걸 보고 있으면서도 꿈이라고 자각하지 않고, 이 자리를 피하지 않는 나카하라였다. 보통이라면 이상하다고 당장 피하기 마련인데, 너무 이상했다. 족쇄가 발을 묶어두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족쇄가 답답하지 않았다. 족쇄라면 당장이라도 풀고 싶어 미쳐버리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절로 포기하는 존재인데, 자유로운 족쇄란 이런 건가. 아니면 벌써 포기한 건가. 전혀 도망가고 싶은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자이의 말을 귀담아듣고 싶었다. 하지만 다자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굳게 다문 입술은 그대로 얼어버린 것 같았다. 분위기는 미치도록 무거웠다. 나카하라는 순간 다자이의 입술을 잡고 쭈욱 늘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분위기상으로는 장난 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화낼 것 같아서 관뒀다. 생각은 그리했지만 손은 벌써 마중 나갔다. 다행히 다자이의 입은 건드리지 않아서 쉽게 거둘 수 있었다. 다자이는 그 손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예전부터 둘은 죽을 잘 맞춰왔다. 그래서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둘 중 한 명의 소속이 달라지면 바로 이러나, 보통은 아니었다. 같이 지낸 세월이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다자이가 나간 순간 나카하라는 무언가 이상했다. 다자이랑 같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용두항쟁 때 어떻게 했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나카하라는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숨을 내쉬었다. 정적을 깰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다. 스쳐 지나가는 소리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다자이가 정상인 건지 모르겠다. 담배를 피우는 나카하라 곁에서 까불대는 다자이가 정상일까, 적 앞에서 살기를 드러내는 다자이가 정상일까, 아무런 표정도 없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다자이가 정상일까, 보스 때문에 투덜거리는 다자이가 정상일까. 아니, 다자이한테 정상이란 걸 뭘까.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다자이의 모든 것이 비정상 같았다. 사람에게 정상과 비정상이 구분되어 있긴 한 걸까, 이런 질문이 자신에게 나오기 전에 이 행동 저 행동 다 비정상으로 치워버린 자신이 이상했다. 다자이에게 정상인 것을 나카하라는 비정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제삼자가 보면 정말 저렇게 살아도 괜찮나 하고 싶을 정도의 어리광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이에 걸맞은 행동의 기준은 없었기에. 이상하게 위가 쿡쿡 쑤셨다. 배를 부여잡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쑤셨다. 빈속에 술을 조금 마셔서 그런가,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 그 대체용으로 마신 술이 속에서 들끓는 건가. 나카하라는 숨을 내쉬고 그제서야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오라는 이유가 뭐였냐? 이렇게 말 안 할거면.

    보고 싶었다고 하면 안 믿을 거지?

    닥쳐, 소름 끼치니까.

    농담이야-...

     

    다자이의 목소리가 갈수록 흐려졌다. 가로등이 찌지직거리다가 이내 훅 꺼졌다.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두웠다. 휴대전화를 꺼내 플래쉬를 키고 싶지는 않았다. 달빛도 자취를 감춘 후였다. 나카하라는 눈을 반쯤 감고 다자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다자이의 공허함에 절로 멍해진 것 같았다. 어두워지니까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몸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나카하라는 눈시울이 이상하게 붉어졌다. 이를 꽉 악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를 악무는 소리를 들었는지 다자이는 고개를 들고 굳은 줄만 알았던 발을 움직였다. 발소리는 이내 가까워지더니 나카하라 앞에서 멈췄다.

     

    뭐야아, 츄야 우는 거야?

    뭐래 시, 아니거든.

    흐응, 기껏 다자이 씨가 걱정해줬는데 튕기기야~?

    입 다물어, 우는 거 아니야.

    네에~우리 울보 츄우야~

    쳐맞기 싫으면 입 다물어.

     

    그게 끝이었다. 다자이는 정말로 입을 다물었다. 나카하라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맞을 정도로 멀쩡한 건 아니었다. 보통이면 싫다고 까불 게 뻔했다. 오락가락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눈을 끔뻑였다. 눈을 오래 감지 않아서 그런지 아팠고, 눈물이 톡 흘러나왔다. 묵직한 건 아니었다. 가벼웠다. 가볍고, 얇은 눈물이다. 그다지 슬픔도 묻어나질 않았다. 나카하라는 한숨을 쉬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를 켜는 순간 주변이 살짝 밝아졌다. 다자이의 얼굴이 잘 보였다. 어느새 벽에 기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까 본인을 실컷 놀리던 사람은 환각이었나, 하고 착각할 정도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 나카하라는 표정이 살짝 변했다. 담배를 입에 붙이는 순간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침 소리가 들렸다. 다자이의 기침 소리였다. 당연한 거였다. 다자이는 비흡연자고 나카하라는 지독한 흡연자다. 하지만 비흡연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동은 옳지 않은 거지만, 나카하라는 지금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뭔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거로 정당화하는 게 애초에 옳지 않은 거지만. 내뿜은 담배 연기는 허공에서 돌아다니다가 이내 제 갈 길을 떠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지금 옆에 있는 다자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음 일부분을 차지한 사람도 금방 사라진다. 현재로써는 적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동료가 될 수 없다. 다자이는 분명 무언가가 있어서 마피아를 나왔다. 그리고 이미 배신자로 찍혔다. 이제는 돌아올려야 돌아올 수 없다. 나카하라는 문득 다자이의 얼굴을 봤다. 저게 정녕 다자이의 얼굴인가 싶을 정도로 어두웠다. 나카하라가 입을 다문 순간, 다자이가 입을 열었다.

     

    그가 죽었어.

    ..?

    오다사쿠, 그가 죽었다고.

    그래서?

    그게 내가 마피아를 나간 이유야.

    그러셔?

    , 오다사쿠가 마지막에 그랬어. 사람을 구하는 쪽이 되라고. 그래서 나갔어.

    맘대로 하시던가, 적이 되는 건 확정이네.

    파트너는 이로써 끝이네?

    환영이다.

    뭐야아, 조금은 아쉬워하는 척이라도 해줘.

    아 아쉽다. 너어무 아쉬워서 눈물이라도 나올 지경이네.

    우흐...

     

    울음이 섞인 것 같은 웃음에 나카하라는 다자이를 유심히 봤다. 울지는 않았다. 그냥 웃음소리가 그런 거였다. 다자이한테 있어서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라고 나카하라는 혼자 예상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생기가 없는 다자이를 본 적이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나카하라는 눈을 반쯤 감고 팔짱을 낀 후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조용히 생각했다. 이때가 오기까지 어떻게 지냈더라,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첫 만남은 어떠했을까, 나카하라는 다시 천천히 기억을 되돌아봤다. 정적을 허무하게 넘기지 않으려는 발버둥 같기도 했다. 생각해보니까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3년이었다. 대략 어림잡자면 1,000일이 살짝 넘는 시간을 지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감도 오질 않았다. 어떻게 이리 변했을까, 완전한 인간이 아닌 나카하라에게 손을 건넨 건 누구일까. 흐릿한 현상을 선명하게 그려봤다. 얼굴의 반을 붕대로 덮고 있고, 다갈빛 머리. 눈앞에 있는 다자이와 같았다. 다자이 자체였다. 나카하라를 구원해준 상대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사람이다. 그리 생각하니까 입술이 떨렸다. 그제야 발을 움직일 수 있었다.

     

    간다.

     

    둘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살짝 거세진 바람은 나카하라의 외투를 움직이게 했다. 눈을 짝 뜬 채로 바라보는 다자이는 깔끔히 무시하고 모자를 고쳐썼다. 답답했던 게 조금은 가셨다. 나카하라는 옅게 숨을 내쉬고 집에 가서 찬물을 마시기로 했다. 빈속에 마신 와인이 위를 쑤시고 있었다. 술을 더 마시고 싶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느긋하게 걸으니까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는 것 같았다. 다자이는 그 뒤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만나면 또 흔들릴까봐 그랬다. 이미 붉어진 눈시울이면 할 말 다 했다. 눈물은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흘릴 뻔 했다. 다자이라는 전화벨은 울리고 있었지만 나카하라는 받지 않았다. 츄야 라고 애달프게 부르는 목소리도 무시했다. 마음은 여러 번 흔들리고도 남았지만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제 나카하라가 말을 걸 수 있는 다자이 오사무가 아니다. 나카하라가 마음을 품을 수 있는 다자이 오사무가 아니다. 집에 가서 물과 함께 그 마음을 흘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있다간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다자이는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품고 있었던 감정도 사라졌다. 숨을 내쉬니 입김이 푸우 새어나왔다. 나카하라는 다시 담배를 물고 고개를 숙였다. 흐릿한 담배연기가 힘없이 새어나오고 이내 기어가고 있었다. 교제를 한 것도 아닌데, 마음 한 구석이 쓸쓸했다. 방금 빠져나간 자리는, 어떻게 메울까. 조용히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이내 거둬졌다. 메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비워두면 언젠가 다시 와서 채워주지 않을까, 작은 미련이다. 나카하라는 눈을 지그시 감다가 다시 뜨고 발길을 이어갔다. 반쯤 메울까 싶었지만 그 반의 존재는 없을 것 같고. 바람이 적당히 흩날리는 하늘에 담배연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 담배연기에는, 나카하라의 미련이 담겨있었다. 저 멀리 있는 다자이는 연기를 보고 고개를 다시 숙였다. 연기에 담긴 감정이 읽혔는지, 절로 울고 싶어졌다. 다자이 근처에 있던 꺼진 가로등의 불빛은 다시 돌아왔다. 다자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고, 이내 툭 떨어지더니 바닥에 스며들고 식어버렸다. 하지만 금방 운 흔적이 아니었다. 얼굴이 제법 붉어져있었다. 아마, 가로등이 꺼진 이후에 참았던 눈물을 흘린 것으로 추정된다. 다자이는 쓸리듯이 주저앉고 소리 없이 울며 중얼거렸다.

     

    가지마...츄야...나 무서워....

     

    나카하라는 당연히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자이는 이 목소리가 나카하라에게 닿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전혀 닿질 않았다. 멀리 떠나버렸다. 다자이는 어린아이처럼 울지는 못했지만, 울긴 울되 서럽게 울지는 않았다. 몸만 큰 어린아이 같았다. 상실감이 큰 다자이는, 제대로 추스르질 못했다. 거의 의지했던 친구가 소설가의 꿈을 저버리고 죽고 나서, 그의 유언을 따르려 정작 마피아를 나왔지만, 갑작스레 혼자가 되어 무서웠다. 눈에 흐르는 눈물은 옷을 적시고 있었다. 다자이는 웅크린 채로 훌쩍거리고 있었다. 조금 진정되고 나자 다자이는 고개를 돌아봤다. 옆에는 온기가 가신 담뱃재가 있었다. 연기 하나 나오지 않고 땅에 붙어있었다. 눈을 반쯤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나카하라의 마지막 흔적이고, 곧 사라질 흔적이었다. 다자이는 마지막 흔적을 담아두지도 않았다. 어쩌면 영영 만나질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상실감으로 인하여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직 20세가 채 되기도 전에 눈물이라도 실컷 흘려두고 성장할까, 그리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가면을 벗고 가면으로 인하여 썩혀둔 감정을 흘려보냈다. 가로등은 다시 깜빡이고 있었다. 다자이는 목 위로 넘어오려는 소리를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카하라의 발자국은 사라지고, 나카하라가 떨어트린 담뱃재는 땅에 스며들고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자이의 눈에 보인 나카하라의 마지막 모습은, 무표정이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표정을 잊어버렸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다자이도 나카하라도, 서로의 흔적을 전부 지워버리고 머릿속에서 치워버렸다. 버틸 수 없던 감정을 전부 버리고 자리를 털었다. 운 흔적은 여전히 남아잇지만 표정은 평온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이 찝찝함도 곧 가시겠지만, 그래도 싫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을 전부 부정으로 바꿨다. 나카하라 역시 같았다. 며칠이 지나고서, 다자이는 다시 가면을 썼고 나카하라는 검은 발자국을 남겼다.

     

    ======

     

    후기 : 안녕하세요 작성자입니다. 기울어진 술잔보다 분량은 적지만 간신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다자이가 포트 마피아를 나온 뒤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에 써본 글입니다. 오로지 망상입니다. 원작을 반영하려 노력했지만, 항상 그 노력이 깨지고 나니 슬플 따름입니다. 시기상 다자이가 마피아를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분세탁을 하기 전으로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정말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다자이는 변하려고 했고 나카하라는 변하지 않았다는 걸 표현을 어떻게 할까 걱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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