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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졔이 | 얼음들
    COLLABORATION/WRITING 2018. 12. 28. 11:27


    *이 글은 음악을 들으며 읽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며, 노래의 전체적인 주제를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잔잔한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어떤 아이는 언제나 자신을 탓했다. 버려진 것도, 원장의 학대도, 내쫓긴 것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모자라고 가치가 없어서야, 하고. 그렇기에 찾아온 작은 행운들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투쟁해야 했다. 아이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네 탓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또래들에겐 아이를 챙겨 줄 여유가 없었고, 어른들은 가혹했다.

     선량한 나카지마 아츠시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정의했다. 자신은 얼음들 속을 유영했다고. 살얼음인 곳을 겨우내 찾아가며, 깨어가며 버둥거렸다고.

     물론 대부분의 삶에서 그는 부딪히고 멍들어야 했다. 아츠시에게 가혹한 세상은, 견딜 수는 있었지만 괜찮다기엔 그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두려웠고, 슬펐다. 지금도 자신에게 확신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얼음을 녹여 나아가는 방법을 안다. 그것이 어린 시절과 지금의 차이였다. 다자이도, 후쿠자와 사장도, 쿠니키다도- 아니, 누구도 좋은 어른에 부합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고아원에 있을 때도 나쁜 어른은 없었으니까. 나쁜 아이만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자신이 가진 생각도 정확하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물론 아츠시는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자신을 탓하는 채로.

    *

     어떤 아이는 어렸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큰 짐을 지고 있었다. 어린 동생, 약한 스스로, 끔찍한 환경. 그 모든 것들이 아이를 몰아붙였다.

     기껏해야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는 남의 것을 필요로 했다. 서슴없이 칼을 들었다. 그 칼끝에 여러 명이 사라졌고, 그 칼로 여러 명의 자기 사람을 살렸다. 아이는 그렇게 울음을 잊었다. 서러워할 여유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얼어붙은 사람이었다. 어른들을 경계하고 자신을 혐오하여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갔다.

     아이는 이따금 해를 삼키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광경. 하지만 아쿠타가와에게는 또 다른 동경이었다.

     그 바다의 모습과 닮아가고 싶었다. 자신을 태우는 태양을 먹어치워, 모두가 나처럼 살아갔으면 하고 바랐다.

     모두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어 줘.

     이기적인 생각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보호했던 방법은 여태껏 이기심 하나뿐이었다.

     알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이 있을 리 없다.

     끝내 자신이 완전히, 바다의 끝까지 잠겨버렸을 때 한 소년을 보았다. 자신의 적으로서 있는 소년을. 자신이 바다이길 바랐다면, 그는 태양이길 바라는 소년이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나카지마 아츠시를 동경할 수 없다. 동경할 수 없게 살아왔다. 다만 자신의 일생과 모순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런 행운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이라며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

     스며드는 한기와 빠른 공기의 흐름. 그것들은 아츠시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오랫동안 지속한 이 감각들은 이미 주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얼어붙은 것이 이 주위인지, 아니면 나카지마 아츠시 본인인지.

     멍하니 앉아있는 아츠시의 근처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리고 얼굴에 던져지는 핫팩과 담요.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열기에 아츠시는 던져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아쿠타가와가 서 있었다.

     누가 봐도 다자이 씨가 시킨 것이 뻔한 모습으로.

     하긴, 아쿠타가와가 그냥 이런 것들을 가져다줄 이유가 없으니까. 애초에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이 겨울에 항구에 갈 거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아츠시는 확실히 추워 보이는 옷차림이기는 했다. 바지도 셔츠도 맨살이 드러났고, 따로 걸친 것도 없는데 바람은 세게 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츠시가 생각하기에 더 필요해 보이는 쪽은 따로 있었다.

    "이런 거, 네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

    "다자이씨께서 네놈에게 주라셨다. 설령 아니라 해도 이 정도 추위는 상관없다."

     미세하게 진동하는 몸으로, 잘도 말한다 싶었다.

    "감기나 걸리라지."

     들으라는 듯 말하고서, 아츠시는 얌전히 담요를 두르고 핫팩을 품에 안았다. 이왕 받은 거, 굳이 춥게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의도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자이 씨가 준 것이기도 하고.

    '따뜻해.'

     이윽고 품속에서부터 온기가 퍼져나갔다. 그러고선, 피부를 휘감아 한기를 가져갔다. 죽을 만큼 춥다- 라고는 느끼지 않았었지만, 심지어 하체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요사노 선생님이나 쿠니키다 씨가 다자이 씨에게 시켰던 일을 미룬 걸지도. 다자이 씨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지…. 하며 배시시 웃었다. 무엇보다도 아쿠타가와가 다자이씨의 말에 따르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졌을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으니까. 이 날씨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자신을 찾으려 헤맸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문득 다시 고개를 돌리자, 아쿠타가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츠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너, 왜 안가?"

    "다자이 씨께서 그대로 있으라셨다."

     애초부터 그랬지만, 다자이는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알 수 있는 종류의 인간상도 아닌 것 같지만. 아츠시와 아쿠타가와가 함께 있으면 서로 불편한 걸 분명 알 텐데, 마치 그걸 노리듯이 한 말 같았다. 어떻게 이 정도로 행동 하나하나가 불순해 보이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핫팩과 담요에 대한 고마움도 의심에 밀릴 정도로.

     "갑자기 궁금한 건데, 왜 그렇게나 다자이 씨의 말을 따르는 거야? 물론 너한테 큰 의미가 있는 사람 같지만…. 그게 잡일까지 도와야 한다는 건 아닌데."

     물론 아츠시도 다자이를 어느 정도 존경하고, 그의 행동들이 대단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평소 다자이의 행실- 자신이 떨어뜨린 각설탕을 쿠니키다 씨더러 치우라거나, 일을 버리고 도망친다거나-을 보면, 분명히 성격 자체가 못된 사람도 맞았다.

     아쿠타가와가 대답이 없자, 아츠시는 괜히 소리를 높였다.

    "그렇잖아? 너는 뭐랄까…. 맹목적이니까?"

    "멍청한 질문이군"

     내뱉는 말은 험악했지만, 표정은 부드러웠다. 일말의 미소도 없었긴 하지만, 어쨌든 아쿠타가와 치고는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덕분에 아츠시의 안에 남아 있던 아주 조금의 찔끔거리는 감정이 싹 사라졌다.

     아쿠타가와는 자신의 대답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었다.

    "소생이 다자이 씨를 따르는 건, 그 사람이 다자이 씨기 때문이다. 네놈 말대로 그 사람은 나에게 넘어설 장벽이자, 인정받고 싶은 존재지. 그뿐이다."

    "의미를 모르겠는데."

     아쿠타가와가 상당한 중증이라는 것이 아츠시의 소견이었다. 애초에 저 녀석은 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대체 인정받고 싶은 것과 잡일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젠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츠시가 떫게 웃자, 아쿠타가와는 매섭게 아츠시를 째려보았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아츠시는 이미 변명쯤으로 듣고 있었지만.

    "아직도 모르겠나? 그저 그 사람이 무엇을 시켜도 상관없다는 소리다. 소생에게 유의미한 사람이기 때문에."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네놈은 없나?"

     "…? 뭐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준 사람이. 나는 다자이 씨로 인해 하수구 같은 곳을 벗어나 마피아에 들어갔다. 네놈도 고아였으니 탐정사가 큰 전환점이었을 터…. 그 다자이 씨조차도 전환점이 되어 준 사람이 있었다."

     전환점?

    "아무래도…. 다자이씨려나, 나도.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네 맹목적임이야. 처음부터 범죄자였던 너와는 개념 자체가 다를지도. 그렇게 맹목적이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거야?"

    "관심 없다."

    "그렇겠지."

     더 이상의 비난이나 대화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윽…. 말을 잘못 했어..'

     생각 외로 거칠게 나가버린 말투에, 아츠시 자신도 당황했다. 딱히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원색적인 비난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한번 이해해보고 싶었다. 들은 바로는 비슷한 환경에서 시작했을 아쿠타가와가, 왜 자신과 전혀 다른 형태의 애착을 두게 되었는지를.

     '다시 묻기는 힘들겠지….'

     비난 아닌 비난을 하고서 다시 말을 걸 정도로 아츠시는 뻔뻔하지 못했다. 대화가 끊겨 어색함으로 가득 찰 즈음, 의외로 말을 먼저 걸어온 것은 아쿠타가와였다.

    "하나만 묻지."

    "…?"

     그리고 잠시의 침묵. 아쿠타가와는 말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네놈은, 왜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거냐."

    "응?"

    "그런 삶을 겪어왔다면, 이미 익숙해졌을 것 아닌가. 어차피 상처를 주려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아. 그러니, 상처를 담금질로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는 것쯤 알 텐데. "

    "너…."

     알 수 있었다. 이건 아쿠타가와의 답지 않은 배려라는걸. 어쩌면 냉대 속에 강해지지 못하고 그저 야위어 간 아츠시를 비난하는 의도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쿠타가와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과거를 비웃는 눈빛 따위는 조금도 없다.

     단지 말하는 것이다. 너는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아쿠타가와의 변덕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데가 있었지만, 아츠시는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냉대와 가혹함 속에 남겨진- 아니, 방치되었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커서 하는 대화여서인가. 아쿠타가와의 작은 배려 역시, 같은 슬픔을 가졌던 사람을 향하는 것일까.

     아쿠타가와가 질문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대답할 생각이라면, 슬슬 말을 꺼내야 할 시점이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아츠시는 살며시 웃었다. 서로의 생사를 가르던 녀석이, 한 수 접고 이야기를 들어 주겠다는데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아쿠타가와, 너는 냉기를 온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어? 어쩐지 몸보다도, 살갗 안에 잠든 혈관들이 얼어붙는 느낌 말이야. 바람보다도 차가운 냉기. 몸이 아니라 마음이 얼어붙는 냉기 말이야."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냉대, 라고 하지. 하지만 그냥 냉정한 것이 아니야.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범하게, 자신보다 작은 아이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 나는 그 무엇보다도 냉대로부터 오는 상처가 무서워."

    아츠시는 항구의 배들이 있는-아쿠타가와의 뒤편으로 배들이 늘어져 있는 항구가 있다-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어쩐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린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거든.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네 놈은 붙잡힌 상태였지 않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시도조차 하지 않게 돼. 고아원도 그렇게 생각했을걸? 나나 너 같은 아이가 뭘 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 먼저 길을 밟은 사람들의 역할일지도 몰라. 쿠니키다 씨는 그게 좋은 어른이라고 했지…."

     아쿠타가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아츠시는, 아쿠타가와의 머릿속에 다자이가 있으리라 확신했다. 좋은 어른.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 맞을까? 아츠시는 아쿠타가와를 따라 눈을 감고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상처보다도…. 받았던 냉대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게 싫은 거야…. 그 냉대에 익숙해져 나마저 차가운 사람이 되어 버린다면…."

     아츠시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좋은 아이가 되지 못한 것에 이어서, 좋은 어른조차도 되지 못할 테니까."

     좋은 아이라는 것도, 결국은 누군가의 어른이 만든 말이다. 아쿠타가와는 그렇게 읊조렸다.

    "요사노 선생님이 내게, 책의 한 구절을 읽어준 적이 있어. 그 구절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하고.

    "그 대사를 한 아이는 자신을 악마라고 생각했어. 너와 꽤 비슷하지 않아?"

     아쿠타가와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처음으로 보는 악의 없는 웃음에, 아츠시는 조금 놀랐다.

    "확실히 소생은 악으로 태어났겠지."

    "나쁜 아이, 그런 건 생겨나는 게 아니긴 하지만."

     해가 점점 사라져갔다. 바다의 아래로, 아래로. 이윽고 해도, 사람들도 어둠에 잠겼다. 모두가 함께. 그림자도 덮어지고, 속도 시꺼멓게 덮였다.

     이제는 커버린 두 아이가 일어났다. 새카만 잿빛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어린 시절의 어른들이 조금 더 따뜻했다면 하는 원망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들이 돌아갈 곳에 얼어붙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발자국 뒤로, 살얼음이 녹아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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