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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 | 침잠沈潛COLLABORATION/WRITING 2018. 12. 28. 11:24
한치 눈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오직 흐릿한 인영 만이 아른거리는 지하 감옥에서 들려오는 것은 간헐적으로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뿐이어야만 했다. 심중心中 따위를 콧노래에 가사로 섞는 당신 같은 건 포트 마피아에 존재할 수 없기에 몇 번이고 제 귀를 의심하며 계단을 따라 내려갔으나 결국 제 눈 앞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4년 전 임무 중 갑작스레 행방불명 되었던 당신이다.
내 새로운 부하는 자네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고. 비웃음이 섞여든 낮은 속달거림이 제 귀를 파고드는 것에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당신의 안면에 대고 휘갈겼다.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주먹에 힘을 풀고 숨을 고르던 중 당신의 코 밑가로부터 피가 길게 흘러내려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발견하고선 흔들리는 눈으로 당신을 응시했다. 1
"소... 소생이, 어찌. ......이만, 물러가겠소."
주춤거리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쥐어짜내듯 당신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하고 고해하려다 그만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곧 입을 틀어 막고 몸을 휙 돌렸다. 절치액완切齒扼腕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소생이외다. 이 곳에 구속된 자가 어떠한 말로를 걷게 되든 간에 그것은 당신의 길과는 다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커다란 장기판과도 같기 때문이고, 그것을 헤집으려 들면 벗어날 길이 없는 미로에 갇히게 되는 법이다. 2
지하 감옥에서 벗어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제 앞에 그 위용을 드러내었다. 소생이 바로 크고 길이 넓은 문에 들어가는 자들 중 한 명이올시다. 3실로 감탄고토甘呑苦吐가 따로 없소, 다자이 씨. 실로 소생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해 주신다고 하셨던 것은 기억 못하시는 것이오. 4당신이 그렇게 떠난 후에 남은 것은 당신의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며 원망 대신 절망하는 한 인영 뿐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소이까. 결국 금방 시들어버릴 무언가를 끝내 인정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찾고 있는 것일지니. 날이 무뎌진 칼날을 벼리고 흐릿하게 껌벅이는 블루 라이트에 아스라이 걸쳐있는 불안감을 따라 입면기 환각 5에 침잠沈潛한다. 6
문득 누군가의 차가운 숨결이 저를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아 더 이상 제 앞에 존재하지 않는 그 태를 어루어 만지며 소년은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당신께서는 구태여 이러한 감정을 비틀고 쩌적쩌적 금 가게 만들어 물밀듯이 밀려오게끔 하시오.
"저, 아쿠타가와님. 다자이 간부께서 임무 도중 행방불... 커억, ......"
"큭...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것일 지언데 감히 낭설이 솔구이발率口而發인가. 7 대답해라, 네 놈."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소년의 코트 자락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검은 정장 차림을 한 남자의 숨통을 조였다. 가치 없는 자가 감히 다자이 씨의 성명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지. 새하얗게 질린 채로 컥컥거리며 버둥거리는 약자를 가만 바라보다 주먹을 꽉 쥐고선 말을 이어나갔다. 소년의 말을 듣고서 눈동자가 잠시 흔들린다 싶더니 곧 축 늘어지는 자를 가만 응시하던 소년은 밭은 기침을 하며 자신의 이능력을 해제했다.
당신께서 사라지신 지 몇 시간이 지난 후에도 수장께서는 제대로 된 수색 명령을 내리시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 또한 다자이 씨의 계획 하일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였을 뿐, 소년은 이러한 상황 자체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당신께서는 결코 임무 중에 사라지실 분은 아니라는, 그런 맹신에 가까운 믿음이 하여금 소년의 모형 심장 박동이 불안하게 들리게 했다. 그리 겨우 연명하며 초조하게 문 주변을 맴돌던 찰나에 어떠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당신께서는 결코 포트 마피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간 소년은 방향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밤거리를 달렸다. 8무거운 눈꺼풀을 찬찬히 들어올리면 펼쳐지는 밤거리의 정경에는 과연 무엇이 남아있는가.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지듯, 방향도 없이 달리던 소년은 결국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항구에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며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던 중, 언젠가 당신께서 입수에 대해 논하셨던 것이 생각나 그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소년은 차디찬 바닷속으로 곧바로 침잠沈潛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청색 시대에서 太宰는 These定立 9그 자체였다. 소년에게 있어 당신은 삶의 의미였으며, 향할 곳과도 같았다. 그것이 분명 지금처럼 심연에 가라앉으면서도 지독하게 당신의 인정을 갈망하는 까닭이다. 가라앉던 소년이 손을 뻗어 수면에 잔 물결을 만들어도 당신께서는 이전과 같이 거미줄을 내려주시지 않을 터다. 당신께서 이러한 까닭으로 포트 마피아를 떠나니 따라올 텐가, 라고 한 마디라도 해주셨더라면. 그랬더라면 소생은 그 한 마디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 한 마디도 없이.
물 아래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 죽는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 홀로 존재한다. 그렇게도 당연한 사실에 소년은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왜 뛰어들었는가. 그것은 당신에게 소년이 침잠한 까닭과도 같았다. 통제력을 잃은 영혼은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 찾고 있는 것이다. 10 11수면 아래서 축 늘어진 채 침잠하던 소년은 제 이능력을 사용해 스스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기필코, 당신께서 소생을 인정하게끔 할 것이오.
코발트 블루의 어둠을 몰아낸 옅은 등색의 서광曙光이 눈꺼풀에 드리우자, 소년은 눈을 느릿하게 깜박거렸다. 금방 깨져 버릴 유리 구슬과도 같은 검은 눈동자가 파도의 하얀 조각들을 비춰내고, 금방이라도 검푸른 파도가 제 안으로 밀려들 것만 같아 소년은 숨을 작게 들이켰다. 이곳이 죄를 씻어내고 다시금 시작되는 곳이리라. 12
제 피부를 그어서 만들어낸 아가미에서 검붉은 색의 끈적한 자괴감이 시나브로 흘러내리는 것에 소년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제 아가미를 세게 그어내렸다. 소년은 이제 당신께서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소생은 더 이상 당신을 믿을 수 없소이다, 다자이씨. 되려 증오하고 있으니. 나의 악마, 나의 신, 나의 스승.
바야흐로 부유浮遊다.
- 슬프고 분하여 마음이 북받침. [본문으로]
- 이를 갈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몹시 분해 함. [본문으로]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마태복음 7장 13-14절 [본문으로]
-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본문으로]
- 일본의 지하철 자살 예방 대책인 '블루라이트.' 블루라이트의 설치 이후 약 87% 정도 자살률이 감소함. [본문으로]
- 잠에 들 시에 환각을 경험하는 것. [본문으로]
- 입에서 나오는 대로 경솔하게 함부로 말함. [본문으로]
- | 아사기리 카프카, 문호 스트레이독스 6권 중 장편 마음 없는 개. [본문으로]
- 헤겔의 변증법에서, 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최초의 명제. '태재는 테제 그 자체였다.' 다자이라는 이름을 한국어로 읽으면 태재인 것으로 착안한 언어 유희. [본문으로]
- Under the water we can’t breathe, we can’t breathe Under the water we die Under the water there is no one watching Under the water we are alone | Aurora, Under the Water [본문으로]
- So many souls, that lost control Where did they fall? Into the deep, what do they seek? | Aurora, Under the Water [본문으로]
- Hearts will dream again Lungs will breathe in Wash away the sin It’s where it begins | Aurora, Under the Wate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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