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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 | 낙원
    COLLABORATION/WRITING 2018. 12. 28. 11:44

    야옹.

    ….

    야옹.

    ….

     

    고양이입니까?

     

    보다못해 말을 꺼냈다. 눈 앞이 점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를 괜히 돌려가며 머리를 쓸었다. 가까운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바닥을 손 따위로 쓰는 소리인지 잘못 나온 웃음소리인지 구분이 안 된다. 늘어진 손을 들어 반대쪽 손등을 쓰다듬었다. 손 끝이 차가워 똑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바닥을 말아 손 끝을 감쌌지만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멎었다. , 아니오, 확실한 대답이 해답이 된다는 걸 모르는 듯 돌아오는 대답 또한 없었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뒷목이 간질거린다. 텅 빈 공간에 두어 번 울리던 목소리조차 이질적인 기분이 들 때 즈음 하나의 음성이 흘렀다. 이런 꿈 속에서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다.

     

    고양이입니다.*

    이름은?

    이름은 없습니다.*

     

    고양이의 이름을 물은 건 제가 아니었다. 이 푸른 암흑 속에서 곧잘 이야길 나누던 목소리였다. 눈을 가리고 외줄타기를 하는 듯 아슬한 걸음을 내딛는다. 야옹. 울음소리가 가까워진다. 문득 발 밑이 축축해진 것을 느낀다. 하단에서 비린 냄새가 났다. 기분 나쁜 냄새인지 아닌지는 물어봐야 알 테지만 분명 누군가는 몸서리치며 싫어할 냄새였다. 비 냄새다. 물기에 젖어 질퍽해진 바닥이 신발 밑창을 적신다. 무심코 빗물에 발을 내디딘 시카구치 안고는 발목에 달라붙은 젖은 풀을 떼어냈다. 발목께에 어린 물기가 새벽 이슬인지 비인지 사카구치 안고는 알 도리가 없었다. 텅 비어있는 공간 특유의 쎄한 기운과 물기 서린 찬바람이 얽혀 금방이라도 공기가 얼어버릴 듯 시렸던 탓에, 사카구치 안고는 답지 않게 자켓을 여몄다. 철퍽, 한 걸음 더 디디면 진흙인지 뭔지 물컹하고 축축한 게 튀어올라 발목을 얼싸안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카구치 안고를 융숭한 것들이란 그랬다. 그러는 동안 바짓단 끝자락이 짙은 갈색으로 물들었다.

     

    철퍽, 철퍽, 계속해서 걸었다. 마땅한 이유는 없지만 그러고 싶은 기분이라고 설명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잘못 내디뎠다간 더 깊은 암흑으로 빠질 것 같던 불안감도 잠시 그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곧 젖은 풀이 발목을 휘감는다. 소름 끼치게 날카로운, 사카구치 안고를 끌어당기는 잡풀이었다. 조악한 다리가 휘청거린다. 밑바닥은 더, , , 깊은 암흑이었다.

     

     

     

    /

     

     

     

    유난히도 그곳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 느껴졌다. 5평도 되지 않는 사무실은 모든 게 죽어버린 듯 고요했고 삼면에 빼곡히 꽂힌 서적들은 이유 없는 압박감을 형성했다. 사람이 죽어도 시체 썩는 냄새 하나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작은 방을 밝히는 등은 너무나도 밝아 눈이 시렸기에, 분명 여러모로 골치 아픈 방이었다. 그곳의 주인이 없는 건 당연했으나, 그곳에서 사카구치 안고가 그곳에서 벌써 몇 년 간 업무를 해왔다는 건 당연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야 그곳에 발을 들였다가 사흘도 붙어있지 못하고 뛰쳐나온 사람이 한 손에는 꼽히지 않을 만큼 있으니까, 누구든 순순히 그곳에 몇 시간이고 앉아있는 이가 마냥 평범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죄인이나 가두어 놓을 것 같은 고지식한 곳에서 사카구치 안고는 눈을 떴다.

    유감스럽게도, 잠에 취한 채였다.

     

    선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발목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광나는 신발도 젖은 구석 없이 매끈했고, 바짓단도 양말도 보송했다. 허나 사카구치 안고는 아직도 바닥이 젖어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고인 물이 철벅이며 튀어 오를 것 같은 바닥을 향해 괜히 발을 두어 번 구르고 나서야 목 뒤가 뻐근함을 느꼈다. 사무용 의자에 앉아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던 탓이었다. 고개를 몇 번 꺾어 통증을 완화해보려고 했지만,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차가운 손 끝으로 만년필을 잡았다. 사카구치 안고가 마쳐야만 하는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지만, 펜을 놀려 써내려 가는 손길은 몹시 침착했다.

     

    사카구치 안고는 현재 요코하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항쟁으로 사망한 87명의 구성원 중 3명의 기록을 끝마쳐야 했다. 몹시 골치 아픈 공간에서 하는 어려운 업무가 보기만 해도 두통이 올 정도로 어지러웠지만 지독하게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신분증과 휴대폰을 살피고, 두툼한 책을 펼쳤다가 닫고, 눕혀놓은 만년필을 다시 손에 쥐길 네 번 반복했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사카구치 안고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검정색 정장을 입은 남성과 붉은 머리에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남성. 속으로 되 내였다.

     

    소지품은 이리 두고 가십시오.”

     

    , 그 이상은 다가오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악취가 나기에.

     

    사카구치 안고가 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름과 포트 마피아 내 직급 같은 겉껍데기뿐이다. 저들이 죽는다면 그들의 인생록을 작성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사카구치 안고는 그들에 대해 깊게 알고 있는 것이 된다. 싫어하는 누군가의 인생록을 쓰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일절 해보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작성 중인 인생록의 가장 아래에 제 이름을 적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인생록을 작성하는 상상은 예의가 아니라고 믿었기에, 사카구치 안고는 그 동안 살아있는 이들의 앞에선 현재 자신의 업무를 곧잘 망각하곤 했다. 그래, 분명히 망각하는 편이 더 쉬웠는데, 이 인간들은 기꺼이 극단적인 상상을 하게 만든다.

     

    사카구치 안고는 방금 꾸었던 꿈이 지금 상황을 예언한 것이었나 쉼없이 고민했다. 지독히도 끈덕하게 달라붙고 저를 당기던 빗방울과 잡풀들이 지금 제 눈에 보이는 저들이었나. 대략 5분 간 지옥을 맛본 사카구치 안고는 결국 순순히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의 뒤를 따랐다. 도저히 몸에 걸치고 있을 수가 없어 벗어놓은 자켓이 손에 우악스럽게 잡혀 힘없이 달랑거렸다. 허공에 아무리 자켓을 털어도 먼지만 털릴 뿐, 악취 나는 보송하고 각 잡힌 자켓이라는 점은 도통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카구치 안고는 난생 처음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면서 죽은 사람의 지나온 인생을 정리해놓은 종이조각을 떠올렸다. 얼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인 허무함의 등 뒤로 비참함도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었다. 허나 때마침 앞서가던 둘의 걸음이 멎었다. 따라 걸음을 멈춘 사카구치 안고의 시야에는 붉은색의 간판이 들어찼다.

     

    [Lupin]

     

    그들이 조금 전 언급했던 자주 가는 가게임을 눈치챘다. 사카구치 안고만큼의 눈치가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문을 여는 몸짓이나,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을 본다면 금방 알게 될 수 있을 법했다. 다자이 오사무나, 오다 사쿠노스케처럼 익숙하지 않고 낯설기만 한 사카구치 안고는 뻣뻣한 팔로 문을 받쳐 밀고, 어색한 몸짓으로 낡은 나무 계단을 밟았다. 삐그덕, 낡은 나무가 무게에 눌리며 나는 소리에 미간이 구겨진다. 조명이 잘 들지 않는 계단을 지나 붉은 조명 아래에 섰다. 유리잔을 닦는 마스터와 그 앞에 자리한 두 사람, 사카구치에게 익숙하지만은 않은 광경이었다. 붉은색의 의자엔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배를 깔고 앉아있었다.

    야옹.

    울음소리에 절로 눈이 간 건 비단 사카구치 안고 뿐만이 아니었다. 다자이 오사무도, 오다 사쿠노스케도 눈을 감고 목을 긁기 시작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 이유가 단순히 갑작스레 고양이가 울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야옹. 고양이는 다시 한 번 울었다. 정적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 생명이 없는 것들까지 눈치채고 숨 죽인 듯 고요했다. 기억 아래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나 정말 흐리게만 보이는 것이라 사카구치 안고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기억을 짚었다. 고양이 한 마리에 이렇게나 조용해질 일이 무어가 있을까. 고지식한 저는 떠올릴 수가 없는 이유라는 걸 알지도 모른다. 되려 이상하다고 생각해버리며 태연하게 한 걸음 내딛자 낡은 나무바닥이 휘어지는 소리를 내며 깔렸다. 그 소리마저 너무 크고 느리게 귀를 파고들었던 탓에, 사카구치 안고는 답지 않게 그 정적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고양이입니까?”

     

    형편없는 질문이었다. 고양이를 바라보던 두 쌍의 시선이 곧장 사카구치 안고에게 집중된다. 왠지 입 안이 바싹 마르고 있었다.

     

    그렇지.” 다자이 오사무가 대답했다.

    이름은 무엇입니까?” 사카구치 안고가 다시 물었다.

    이름은, 없어.” 오다 사쿠노스케가 대답했다.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을 마주하는 순간은 예상 외로 담담했다. . (Bar)에 가방을 올려두는 소리를 기점으로 세 사람의 세상이 바뀌었다. 뒤집혔다.

     

     

     

    /

     

     

     

    운명처럼 만나게 된 세 사람은 그 후로도 곧잘 가게를 찾았다. 세 사람과 마스터, 고양이까지. 정해진 다섯만이 같은 공간이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했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세 사람은 예상을 벗어나 꽤나 가까워졌다. 셋 모두 서로를 깊게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겉껍데기만 친구 흉내를 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세 사람은 서로를 친구라고 지칭하는 것을 변치 않았다. 사생활 없이 생활하는 이들이었기에 나누는 대화라곤 그날의 업무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고, 늘 그들의 곁을 지키던 고양이가 어느 날에 속삭였다.

     

    각자의 운명이 있다. 명이 짧은 사람은 남들보다 일찍 상을 치르기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짓을 해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다. 죽도록 노력해도 닿지 못할 곳에서 한눈에 상황을 내려다보거나, 손바닥 뒤집듯 상황을 엎어버려도 운명을 거슬렀다기보다는 결과가 다른 운명에 발을 담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세 명이 하나라고, 약속했어도 정해진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운명 앞에서는 무력한 사람이 된다. 설령 운명을 뒤엎었다고 믿어도, 그것마저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눈을 가리고 누군가에게 이끌려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목적지도 알 수 없고 옳은 길인지도 알 수 없지만 머리를 쓰지 않으니 마음은 편하다. 세 사람은 여지껏 그런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애초에 신경 쓰지 않고 있을 수도 있지만, 모든 걸 알고 있었음에도 정해진 운명의 손을 잡고만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게 그들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들은 운명에 끌려갔다. 가장 먼저 죽게 된 사람은 오다 사쿠노스케였다.

     

    다자이 군.”

    “…….”

    “…다자이 군?”

    “…….”

     

    오늘따라 말이 많네, 안고.

    ? …….

    오다 사쿠는 이곳에 없어.

    …….

     

    짙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공허한 공간은 소리의 울림이 커 그 정도의 작은 소리는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사카구치는 호흡했다. 허나 숨이 막혔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적막과 빛이 점멸한 공간이 핍억하는 바늘을 닮아 눈을 감았다 언제 죽을지 모를 감정을 느낀다. 호흡이 편하지 않다. 가슴이 답답해 쉴 새 없이 달리기를 한 것처럼 거친 숨을 토해낸다. 이곳에 없어. 사고가 정지됨을 느낀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한 순간에 당연하지 않게 여겨야 하는 과도기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비가 내렸다. 예처럼 바닥만 젖어있는 것이 아닌 상단에서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 냄새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진해질 것이다. 사카구치는 애써 단정하게 입은 옷이 비린내 나는 물에 젖어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불쾌해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정도로 한동안 사카구치는 넋을 놓고 있었다. ‘없다라는 형용사의 뜻을 떠올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사카구치가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간이나 자리를 차지하지 않은 상태에 있음.- 그래, 사카구치는 깨닫는다. 오다가 서있을 자리는 없다, 애초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 이유를 유추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포트마피아, 아니면 자신이 한 짓일지도 모른다. 무너트렸다. 사카구치 안고는 오다 사쿠노스케가 서있을 자리를 무너트렸다.

    다자이 군.

    대답이 없다. 야옹. 고양이가 울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카구치 안고는 오다 사쿠노스케가 서있을 자리를 무너트렸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가 서있을 자리도 무너졌다.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의도했을 수도 있다. 사카구치 안고는 울지 않았다. 가슴께가 답답했다. 무어든 토해버리고 싶었다. 이마를 짚었다. 눈꺼풀이 무겁다.

     

    몸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서있는 게 버겁다는 마음이 자꾸만 생긴다. 문득 발 아래를 보고 깨달았다. 비는 그쳤다. 바닥에 얕게 물이 차있다. 그리고 검은 물에 젖은 풀이 발목을 감았다. 오다 사쿠 씨. ……. 대답이 없다. 야옹. 다시 고양이가 운다. 발을 내딛자 날 선 풀이 발목을 거칠게 당긴다. 조금 휘청였지만 곧 중심을 잡았다. 걸을 수 있었다. 사카구치입니다. …….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야옹. 다시, 고양이다. 이번엔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무력하게 발목을 안은 풀이 당기는 데로 이끌렸다. 빗물이 이리저리 사정없이 튀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제가 서있을 자리가 무너진다. 없어진다. 한쪽 발이 쑥 미끄러지자 순식간에 몸이 추락한다. 무력함을 느끼고 눈을 감는다. 사카구치 안고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끝 없이 추락한다. 여기서 눈을 뜨면 현실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없다. 그들의 세상이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夏目漱石, 吾輩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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